코로나19 사태 이후 신용대출과 같은 민간 신용이 실물경제에 비해 지나치게 커지며 금융 취약성이 과거 경제 위기 당시보다 훨씬 커졌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차기 정부는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수급 문제 해결 외에 가계 부채 해결에도 팔을 걷어붙여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9일 발표한 ‘최근 우리나라 금융 사이클의 상황·특징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민간을 중심으로 금융 취약성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보고서는 가계와 기업 신용을 합친 ‘실질 민간 신용’을 금융 사이클 지표로 놓고 1980년 1분기부터 2021년 3분기까지 관련 결과를 측정했다. 이에 따르면 현재 금융 사이클은 1980년대 이후 일곱 번째 확장기에 있으며 변동 폭은 더욱 커졌다.
특히 한 시점의 실질 민간 신용과 장기 추세 사이의 격차를 뜻하는 실질신용갭률(평활화계수 2만 5000 적용)의 경우 지난해 3분기 5.1%를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 민간 신용 규모가 장기 균형 수준 대비 5.1% 많다는 뜻이다. 이 같은 수치는 내수 활성화를 위해 신용카드를 무제한 발급하며 촉발된 ‘신용카드 사태(2002년 4분기·3.4%)’나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4분기·4.9%)’ 당시보다 높은 수준이다.
코로나19 이후 금융 사이클과 각 산업 및 가계의 살림살이 지표가 되는 실물경제 사이클 사이의 괴리 현상도 심해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민간 신용을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비율은 2019년 4분기부터 2021년 4분기까지 2년간 26.5%포인트 상승했다. 살림살이는 별로 나아지지 않은 가운데 대출만 늘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이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2분기부터 1999년 1분기까지의 상승 폭인 13.4%포인트를 웃도는 것은 물론 신용카드 사태 당시인 2001년 4분기와 2002년 4분기 간의 8.9%포인트에 비해서도 높다. 무엇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7년 4분기와 2009년 3분기의 21.6%포인트보다도 높았다.
해당 보고서는 또 1980년 이후 금융 사이클과 주택 가격 사이클 사이에 강한 동조 관계가 나타난다고 밝혔다. 시장에 돈이 많이 풀릴수록 주택 가격도 빠르게 상승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과거 수출 호황 등으로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렸던 2005년 전후는 물론 코로나19에 따른 확장적 재정 정책 및 저금리 기조가 맞물린 최근 몇 년간에도 이 같은 흐름이 나타났다.
다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 비슷한 흐름을 보였던 금융 사이클과 기준금리 사이클의 경우 코로나19 사태 이후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역(逆)동조’ 관계로 전환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은행이 이전에는 실물경기가 활성화되면 금리를 인상하며 경기 조정에 나섰던 반면 최근에는 경기 하강에 대응하며 기준금리를 낮추면서 오히려 신용 증가로 이어졌다는 말이다.
이정연 한은 금융안정국 관리총괄팀장은 “민간 신용의 총량이나 증가율이 과거 위기 당시보다 높은 수준이다”라며 “지금 당장 위기 상태라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 사례로 미뤄 이런 상태에서 대내외 충격이 발생하면 위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던 만큼 현재 우리 금융이 그만큼 위기에 취약하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주택 가격 움직임이 가계 신용 확장에도 영향을 받아 금융 사이클의 진폭을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온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취약성을 줄일 수 있는 정책의 필요성이 커졌고, 향후 금융 사이클에 대한 모니터링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