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세계 예술계의 연대가 확산하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반전(反戰)과 평화를 위한 문화예술계의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은 명분 없는 전쟁에 반대하는 의미로 올해 열리는 16회 축제(6월 24일~7월 11일)에서 러시아 작품을 제외하기로 했다. 축제 측은 폐막작으로 러시아 작품을 선정해 무대에 올릴 예정이었으나 이번 사태로 초청을 전격 취소했다. 지난 2009년 제3회 행사부터 교류하며 10년 넘게 9편의 러시아 작품을 국내에 소개해 온 DIMF로서는 어려운 결정이었다. 특히 이번 축제는 DIMF가 2년 만에 글로벌 작품 초청을 재개하는 자리로 사무국은 이미 2020년부터 러시아 창작 뮤지컬 초청 작업에 착수해 막바지 계약 조건을 협의하던 중이었다. 배성혁 DIMF 집행위원장은 “이번 축제에 소개하려던 뮤지컬은 작품성, 음악성, 대중성 어느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DIMF를 통해 국내에 꼭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었다”고 안타까워하면서도 “전 세계가 평화를 촉구하는 마음으로 하나 되고 있는 지금은 더 큰 명분과 대의에 뜻을 모으는 것이 당연하다”고 밝혔다.
세종문화회관은 지난 4일부터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는 ‘평화의 빛(Peace Light)’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이 캠페인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국민을 위로하고 세계 평화 유지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기획됐다. 지난달 27일부터 남산 서울타워, 세빛섬, 광안대교, 영화의전당 등 곳곳에서 ‘평화의 빛’이 밝혀지고 있다. 세종문화회관은 우크라이나 국기를 표현하는 파란색과 노란색 조명을 오후 6시 30분부터 오후 11시까지 건물 외벽에 송출한다.
단체 아닌 개인의 연대도 이어지고 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지난 4일 인천 청라블루노바홀에서 열린 리사이틀 1부에선 푸른색, 2부에선 노란색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이날 공연은 우크라이나 출신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니콜라이 카푸스틴의 추모 앨범 발매를 기념하는 자리로, 손열음은 우크라이나 국기와 같은 색깔 옷으로 연대를 표시했다.
반전(反戰)의 움직임은 대중문화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밴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밴드2’를 통해 결성된 밴드 더 웨일스는 지난 6일 서울 용산구 노들섬 라이브하우스에서 열린 단독공연에서 우크라이나 국가를 연주했고, 존 레논의 대표곡이자 반전 노래인 ‘이매진’(Imagine)도 불렀다. 그룹 비투비 멤버 이창섭은 지난 3일 엠넷 ‘엠카운트다운’ 방송에서 최근 발표한 신곡 ‘노래’의 무대를 마무리할 때 ‘노 워’(No War)를 외쳤다.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와 인디애니페스트 집행위원회는 반전 메시지를 담은 배미리 감독의 '손'(HAND), 이문주 감독의 '우크라이나를 위하여'(For Ukraine)를 공개했다. 두 단체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창작자로서, 사람들의 소중함과 그리움을 아는 인간으로서 이 슬픈 전쟁을 지금 당장 멈추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는 앞서 지난 3일 성명을 내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러시아의 침공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이러한 종류의 폭력은 어느 때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기부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단색화’로 유명한 원로화가 박서보는 지난 7일 자신의 SNS에 “침략전쟁은 범죄다”라고 강조하며 “나는 이 비극적인 전쟁을 끝내기 위해 5000만원을 우크라이나 정부에 지원했다”고 밝혔다. 그는 파란색 상의 위에 노란색 니트를 덧입은 ‘색채 저항’의 사진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의지를 드러냈고, 우크라이나 대사관으로 보낸 지원금 이체 확인서도 함께 공개했다.
배우 한지민은 지난 8일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 1억 원을 기부했고, 배우 이영애도 지난 1일 주한우크라이나대사관에 “우크라이나 국민 모든 분들의 안녕과 무사를 기도드린다”는 편지와 함께 1억 원을 기부했다. 배우 임시완은 숙박 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숙소를 예약한 후 방문하지 않는 방식으로 기부하는 이른바 ‘노쇼 기부’에 동참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