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코로나19 유행으로 불거진 차량용 반도체 등 부품 공급망 문제로 시름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공급망 붕괴에 기름을 부었다. 니켈 등 핵심 원자재 가격마저 치솟으면서 전기자동차 시장의 급성장세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는 이번 주 울산 공장의 생산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중국 산둥성 지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함에 따라 와이어링하니스(자동차 배선 뭉치)를 납품하는 현지 협력사 공장들이 지난 9일부터 가동을 멈췄기 때문이다. 일단 출시를 앞둔 GV70 전동화 모델을 비롯해 GV60·GV80 등 제네시스 주요 제품에 들어가는 와이어링하니스가 15일부터 결품이 예상된다. 현대차(005380)는 일단 주 중반까지 일부 공장을 조립 차량 없이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는 이른바 ‘공피치’로 운영하며 이후 상황을 지켜본다는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의 회복세가 예상보다 더뎌 이미 공피치 가동을 해오던 상황에서 와이어링하니스 수급까지 불안정해질 경우 정상 가동은 더욱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와이어링하니스는 중국 내 코로나19가 확산되던 2020년에도 국내 완성차 공장을 줄줄이 멈춰 세운 바 있다. 최근 들어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산 와이어링하니스 수급에 차질을 빚어 유럽 완성차 업계가 불안에 떨고 있다.
폭스바겐이 이달 초 츠비카우 등 독일 내 공장 2곳의 가동을 중단한 것을 시작으로 아우디·포르쉐·BMW 등의 유럽 공장들이 일시적으로 문을 닫거나 감산에 나섰다. 아우디는 7일(현지 시간)부터 잉골슈타트와 네카르줄름 공장, 포르쉐는 라이프치히 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했다. BMW도 공급 병목 현상에 발목이 잡혀 독일과 영국 내 공장을 멈춰 세웠다.
공급망 붕괴 속 ‘반도체 리스크’는 상수가 된 분위기다. 현대차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은 차량용 반도체를 포함한 부품 수급난을 이유로 1일부터 가동을 중단했다. 당초 9일부터 다시 공장 문을 열 계획이었으나 재가동이 미뤄지고 있다. 이외에도 미국 테슬라가 칩 부족 문제를 고려해 올해 신차를 아예 내놓지 않기로 결정하는 등 자동차 산업계 전체가 반도체 부족의 영향권에 들었다.
글로벌 완성차 생산에 차질이 불가피해지면서 국내 수입차 업체들도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 이미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으로 올해 들어서는 인도 지연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우크라이나 사태로 공급망 문제가 악화함에 따라 국내 공급 물량이 더 줄어들 가능성이 커졌다. 이미 일부 인기 차종의 경우 재고가 바닥나면서 수입차 시장에서도 1년 가까이 대기가 필요한 모델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 같은 가동 중단의 여파가 국내에 나타나는 2~3개월 이후에는 대기가 더 길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악재 속에서도 승승장구하던 전기차 시장 또한 비상등이 켜졌다. 전기차 배터리의 성능을 좌우하는 니켈을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니켈 가격은 10일 기준 톤당 4만 2995달러를 기록했다. 2만 3000달러 안팎이었던 지난달과 비교해 가격이 2배 가까이 치솟았다. 런던금속거래소(LME)는 8일 니켈 가격이 한때 톤당 10만 달러를 넘어서자 거래를 중단하기도 했다. 니켈 가격 급등세가 이어질 경우 완성차 업체의 비용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는 현 니켈 가격이 유지되면 현대차의 부담은 3000억 원가량 늘 것으로 전망한다. 니켈 외에 코발트 가격도 전년 평균 대비 60.6% 오른 톤당 8만 2400달러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