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월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가 직면한 외교안보 환경은 녹록지 않다. 미중 패권 경쟁 격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신냉전 구도가 형성되는 가운데 글로벌 경제 전쟁이 가속화하고 있다. 북한은 핵·미사일을 고도화하며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한미협회 상근부회장인 이용준 전 북핵 대사는 14일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난맥상을 거론하면서 “대(對)북한·대중국 굴종에서 벗어나 ‘정상적 국가’로의 복귀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새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방향에 대해 “민주주의·인권을 공유하는 가치 동맹을 굳건히 하기 위한 대외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북핵 전략을 ‘비핵화 협상’에서 ‘대응 수단 강구’로 전환해야 할 때”라며 미사일 방어망 확충, 재래식 군사력 증강, 미국의 핵우산 강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자주성을 상실한 대외 굴종이라는 점이다. 그것도 우리의 최대 가상 적국인 북한과 중국에 굴종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이념적 이유로 남북 관계 개선에 절대 가치를 부여하는 바람에 여타 외교안보 기능은 남북 관계의 종속 변수로 전락했다. 이로 인해 한미 연합 훈련 등 북한이 싫어하는 것은 시행 불가능하게 됐다. 또 모든 미중 간 핵심 쟁점 현안에서도 예외 없이 중국 입장을 추종했다. 이를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정책이라고 강변하지만 실제로는 경제는 물론 안보까지 중국에 편향된 ‘안중경중(安中經中)’ 노선이었다. 특히 대중국 ‘3불 정책(미국 미사일방어체계 불참, 한미일 군사 협력 불참, 사드 추가 배치 불가)’은 우리나라의 안보 주권을 중국에 내준 매국적 수준의 약속이다.
-윤석열 정부가 가장 시급히 해야 할 대외 정책 과제는.
△외교안보 정책의 정상화를 통해 대외 관계에서 ‘정상적 국가’로 복귀하는 것을 주요 정책 목표로 삼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대한민국은 자유 진영의 공적이라 할 수 있는 북한과 중국에 맹종하는 ‘이상한 나라’로 낙인 찍혀 도처에서 왕따 신세가 됐다. 우선 대북·대중 맹신의 족쇄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대외 정책을 펼쳐야 한다. 외교·국방·대북 정보 등 모든 외교안보 부문에서 본연의 정상적 기능 복원이 시급하다. 이를 통해 지난 5년 동안 훼손된 한미 동맹을 이전 상태로 되돌려놓아야 한다.
-또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익 지향적인 후진국 외교에서 탈피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가 바뀔 때마다 이익 개념이 바뀌고 그에 따라 외교 정책도 오락가락했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그렇지 않다. 손해를 보더라도 지향하는 가치에 어긋나면 바로 행동한다. 자유민주 진영과 선진 문명 사회가 공유하는 핵심 가치는 민주주의와 인권이다. 한국도 이 진영에 속해 있는 만큼 민주주의·인권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국제 사회에서 기여를 확대해야 한다.
-대중국 외교는 어떤 방향으로 전환해야 하는가.
△첫째, 자유민주 진영의 공동 가치인 민주주의와 인권을 토대로 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이를 통해 신장위구르 인권 문제와 같은 국제사회의 공통 의제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 둘째, 제국주의적 팽창을 추구하는 중국에 대한 정치·군사·경제적 대응 태세를 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미 연합 훈련 복원, 한미일 해상 훈련 재개 등을 통해 한미 동맹, 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또 3불 정책을 폐기하고 자주 외교를 복원해야 한다.
-중국에 대한 우리나라의 무역·투자 의존도가 매우 높은데.
△대중 경제 관계를 지속 발전시켜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안보가 경제의 볼모가 되지 않아야 한다. 문재인 정권 세력들은 대중 경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중국의 비위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거짓말이자 핑계에 불과하다. 정치·외교적 관계가 나빠진다고 해서 경제에 반드시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우리처럼 대중 무역량이 많은 나라는 호주·일본 등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이 나라들은 중국이 잘못하면 강하게 비판한다.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군사 훈련도 같이한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 이들 국가와 무역을 중단할 수는 없다. 자칫 자신들만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은 왜 지나치게 중국 눈치를 보는가.
△중국의 제재가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하니까 그런 것이다. 일방이 제재한다고 상대방이 전적으로 손해를 보는 시대가 아니다. 중국이 무역 보복을 하면 한국은 반도체 수출 금지 등으로 대응이 가능하다. 이렇게 하면 반도체를 구하지 못한 중국 전자 산업이 흔들린다. 그렇다고 중국이 적국인 대만에서만 반도체를 사올 수 있겠는가. 경제적 이익 때문에 중국에 안보 주권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새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대중 첨단 기술 공급망 통제를 확대하고 있는데 우리도 적극 협력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과도한 대중 무역·투자를 줄이고 시장 다변화를 해야 할 것이다.
-한미 동맹 강화와 한미일 협력을 회복할 방안은.
△한미 동맹과 한미일 안보 협력의 훼손은 문재인 정부의 친중·친북 정책 탓이다. 따라서 해결책도 간단하다. 새 정부가 친북·친중 노선을 철폐하면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은 자연스럽게 복원된다. 정부가 의지를 가지면 큰 어려움 없이 이전 상태로 복귀할 수 있다. 한미 동맹을 정상화하려면 한미 연합 훈련을 전면 재개하고 상주 사드 기지의 환경 영향 평가를 빨리 종결해 정상 가동해야 한다. 두 가지는 한국 안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만큼 최우선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한미일 협력의 난제는 과거사 문제인데.
△한일 과거사 문제는 원천적으로 해결이 쉽지 않지만 이전 정부에서도 똑같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과거사와 안보를 분리 대응해 한미일 협력에는 큰 이상이 없었다. 과거사와 독도 문제는 그것대로 대응하면서 이와 별개로 안보를 위한 한미일 협력을 계속 추진하면 된다. 이를 위해 한미일 합동 해상 훈련 재개, 조건 없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 등이 필요하다.
-북핵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북핵 대처에서는 한국이 직접 당사자라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게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처럼 이를 미국에 떠넘기고 남의 일인 양 방관하는 무책임한 자세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북핵 문제를 회피한 채 남북 관계를 아무리 진전시켜도 사상누각일 뿐이다. 또 비핵화 협상을 계속 추구하되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현실 인식을 가져야 한다. 북한이 다량의 핵탄두를 보유한 상황에서 협상을 통한 비핵화는 대단히 비현실적이다. 북핵 대응 전략을 ‘비핵화 협상’에서 ‘북핵 대응 수단 강구’로 전환해야 한다. 북핵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가 최대 어젠다가 돼야 할 것이다.
-구체적인 북핵 대응 수단은.
△미사일 방어망 확충과 재래식 군사력 증강을 통한 압도적 국방력을 확보해 북한이 공격할 꿈도 꾸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또 명목상으로 존재하는 미국의 핵우산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쓰면 미국이 자동 개입할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독자 핵 개발이나 미국 핵무기 반입, 핵 공유 협정 등은 비현실적인 대안이다.
-대북 제재는 어떻게 해야 하나.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완전한 비핵화가 종결될 때까지 대북 제재 조치를 견고하게 유지하는 일이다. 유엔의 대북 제재는 북한 비핵화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비군사적 수단이자 마지막 희망의 끈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점진적 제재 해제를 전제로 하는 단계적·부분적 비핵화를 얘기하는데 이는 북핵을 영구화하는 첩경이다.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면서 바이러스 일부만 제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의미한 조치다.
-남북 관계 정립을 위한 장기적 대책은.
△현 정부는 자꾸 동포·민족을 들먹이며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주장하면서 일방적으로 주고 양보해왔다. 이런 행태는 남북 관계 개선은 물론 통일을 앞당기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수성 논리에서 탈피해 일반 국가 관계에 적용되는 투명하고 객관적인 관계로 정립해야 한다. 감성적으로 접근하면 실질 관계 진전에 도움되지 않고 북한의 대남 정책에 이용만 당할 뿐이다.
-남북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한 구체적 방안이 있다면.
△과거 동·서독 관계와 같은 철저한 상호주의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인도적 지원을 제외한 모든 대북 경제 지원에 상호주의를 적용해야 한다. 서독은 대동독 3불 원칙을 견지했다. 요구가 없으면 주지 않고 상응 대가가 없으면 주지 않으며 투명성이 없으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동독의 체제 개방과 인권 증진에 크게 기여하고 통일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동안 대북 정책을 왜곡시켜온 정책 결정·집행 구조를 대폭 개편해야 상호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 부처 이기주의가 작동하지 않게 하려면 통일부를 해체하거나 기능을 조정해야 한다. 부작용이 심한 남북협력기금도 폐지해야 한다. 기금 형태가 아닌 정규 예산으로 전환해 국회나 예산 당국의 통제를 받도록 할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교훈은 무엇인가.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세 가지 교훈을 일깨워 준다. 전쟁은 어느 날 갑자기 닥칠 수 있고 이에 대비해 상당 수준의 자위용 군사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 자신보다 강한 외적에 대처하기 위해 동맹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가 간 관계는 어디까지나 상호적인 것이다. 남이 도와주기를 원하면 나도 베풀어야 한다.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해 타국 안보 위기에 대한 관심과 지원에 동맹국과 함께 적극 동참해야 하는 이유다.
He is…
1956년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제13회 외무고시에 합격한 뒤 외교부에서 장관 보좌관, 북미 1과장, 북핵 대사, 차관보 등으로 일했다. 주말레이시아 대사와 주이탈리아 대사도 지냈으며 현재 한미협회 상근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북핵 30년의 허상과 진실’ ‘대한민국의 위험한 선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