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이 유럽에 향후 10년간 400억 유로(약 109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공개하며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시장의 ‘패권 경쟁’에 도전장을 던졌다. 파운드리 시장 세계 1위인 대만의 TSMC도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는 가운데 선두 추격과 후발주자 견제를 동시에 이뤄야 하는 삼성전자(005930)의 인수합병(M&A)이 지연되면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본지 3월 4일자 1·7면 참조
팻 겔싱어 인텔 CEO는 15일(현지 시간) 온라인을 통해 인텔의 유럽연합(EU) 내 1단계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독일에 170억 유로(약 23조 원)를 투자해 최첨단 대규모 팹 2개를 건설하고 프랑스에 새로운 연구개발(R&D) 및 설계 허브를 조성하는 내용이 담겼다. 아일랜드·이탈리아·폴란드·스페인에도 투자를 진행하기로 했다. 앞서 지난 1월 미국 오하이오주에 200억 달러(약 24조 원)의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등 파운드리 시장 재진입 선언 이후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이번 투자 계획을 보면 인텔은 독일 마그데부르크에 170억 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짓고 아일랜드에는 120억 유로(약 16조 4000억 원)를 들여 생산 시설 확장에 나선다. 프랑스에는 R&D센터 허브를 구축해 인텔의 고성능 컴퓨팅과 인공지능(AI) 설계 부문 유럽 본사 역할을 맡길 계획이다. 이탈리아에는 최첨단 백엔드 제조 시설 구축, 폴란드에는 인텔 연구소 확장 등을 위한 투자에 나선다.
인텔이 미국에 이어 유럽에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인텔과 서방국 간의 ‘반도체 동맹’ 체제가 구축되게 됐다. 인텔로서는 파운드리 시장 1·2위인 TSMC와 삼성전자를 따라잡기 위한 공급망 확대를 추진할 수 있고 EU 또한 아시아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 시장에 대응하기 용이해졌다. EU는 현재 9% 수준인 EU 회원국의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오는 2030년까지 20%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하고 있다.
인텔의 공격적인 추격에 맞서 글로벌 선두인 TSMC도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며 대응하고 있다. TSMC는 올 1월 사상 최대 규모인 400억~440억 달러(약 47조 5000억~52조 3000억 원) 규모의 설비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업계 2위인 삼성전자 또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20조 원 규모의 파운드리 공장을 짓는 등 171조 원의 투자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아직 TSMC와 삼성전자가 첨단 미세 공정 기술력에서 인텔에 앞서 있지만 공격적인 투자 속에 격차가 빠르게 줄어들 수 있는 만큼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초격차’ 유지를 통해 후발 주자를 견제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예고했던 M&A가 늦어지면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초 한종희 DX부문장(부회장)이 ‘빅딜’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이후 구체적인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유럽의 반도체 기업인 네덜란드의 NPX 인수설이 언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