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워런 버핏 등 기부를 많이 한 억만장자 부자는 많다. 하지만 살아있을 동안에 모든 재산을 기부해야 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실제로 전재산 80억 달러(약 10조원) 내놓은 사람은 미국의 척 피니(본명은 찰스 프랜시스 피니)가 처음이고 아직까지도 유일하다. 그는 “누구도 한번에 두 켤레의 신발을 신을 수 없다”며 부의 축적보다 처리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널리 알려진 ‘기부왕’ 빌 게이츠의 기부활동도 피니에게 영감 받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책 ‘척 피니’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맨손으로 억만장자 부를 이루고 결국에는 이들 부를 모두 사회에 환원한 사람, 척 피니의 이야기다.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미국에서 대공황기였던 1931년 가난한 아일랜드계 미국인 가정에서 태어난 피니가 세계 최초의 면세쇼핑 제국인 DFS(듀티프리쇼퍼)를 설립하고 억만장자가 된 것과 함께 1980년대를 기점으로 이들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과정이다.
독자에 따라서는 돈을 버는 과정에 더 관심이 있을 수도 있겠다. 책의 3분의 2 이상은 실제 피니의 기부활동에 맞춰진다. 참고로 미국이나 전세계에서 대부분은 개인이 죽은 후 유산을 갖고 진행하는 ‘생후 기부’였다. 하지만 피니는 자신이 살아 있을 때 모든 부를 환원하겠다는 ‘생전 기부’ 원칙을 만들었고 이를 끝까지 실천했다.
우선 척 피니가 부를 쌓은 과정은 흥미롭지만 대부분의 다른 억만장자들과 비슷한 패턴을 거친다. 그는 어릴 때부터 돈벌이에 열중했다. 대학에서 샌드위치를 팔았던 것은 재미있는 일화다.
제2차대전 직후 일본에 주둔한 미국으로 군복무를 4년간 한 피니는 상대적으로 군대 사회에 익숙했다. 나중에 유럽에서 주둔 미군을 대상으로 면세사업을 구상했다. 제대해 귀국하는 미군에게 유럽산 술을 면세가격으로 판 것이다. 면세품을 판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신종 사업이었다.
처음에는 보따리상과 다를 바 없는 처지였지만 점차 사업을 늘린다. 하와이와 홍콩 공항에 면세점을 내면서다. 바로 세계적인 면세 체인 DFS의 시작이다. 그는 일본의 경제호황과 맞물려 회사를 글로벌 대기업으로 키운다. 사람들의 여행이 급증하면서 면세사업도 발전한다. 이 책의 독자들은 척 피니를 따라 ‘면세점’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이의 밝은 면과 함께 어두운 점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흥미롭다.
1980년대가 그의 면세사업의 절정기였다. 그런데 이때부터 그는 오히려 기부에 관심을 돌린다. 그는 1984년 처음 자선재단을 세우고 기부에 몰두한다. 점차 그는 사업가로서가 아니라 기부가로서 명성을 유지했다. 나중에 그는 DFS를 매각하고 이 자금도 기부를 위한 종잣돈으로 활용한다.
그의 기부는 다른 사람과 두 가지가 크게 달랐다. 첫째는 일찍이 모든 재산을 자선재단으로 옮기고 “모든 돈은 살아있을 때 기부하겠다”는 의지를 실천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기부할 때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이름이 빌 게이츠 등과 달리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됐다. 그의 기부 대상은 미국과 함께 아일랜드, 베트남,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전세계를 망라했다. 의료와 보건, 교육 등에 집중한다.
다만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의 이름은 꼭꼭 숨겼다. 기부대상자들은 기부금의 출처에 대해 함구해야 한다. 이는 하나의 첩보작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부를 쌓고 싶은 독자들이 피니의 ‘연금술’에 관심을 가지면 되겠다. 이미 부를 쌓은 사람들은 그의 기부활동에 주의를 집중할 수 있다. 책에 따르면 피니는 2012년까지 62억 달러를 이미 기부했다. 이 책은 2013년에 씌어졌다. 실제로 지난 2020년 포브스지에 보도에 따르면 피니는 총 기부액이 80억 달러를 달성한 후 자신의 ‘애틀란틱 필랜스로피 재단’을 해체했다.
자선단체도 하나의 조직이기 때문에 조직 자체의 문제를 드러낸다. 즉 합의로 재단을 실제 운영한 사람들은 나중에 피니의 의지와 달리 가기도 한다. 책에는 자신의 기부철학을 지키려는 피니와 당시 유행에 따르려는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과 해결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담겼다. 다만 이후 게이츠는 개인 조직을 통해 기부활동을 했기 때문에 이런 모순이 발생하지 않았다. 2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