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소통왕' 만든 이 사람…실리콘밸리도 흔들었다 [정혜진의 Whynot실리콘밸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과정에서 실리콘밸리에서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이상으로 화제가 된 인물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정보기술(IT) 정책을 책임지는 디지털혁신부 장관 미하일로 페도로프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유사한 부처입니다. 전쟁 중에 이 부처의 장관이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하기 쉽지 않은데 기존의 상상력을 뛰어넘은 행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 때만 해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을 담당하며 수백만명의 팔로워를 확보해 지지율을 높이는 데 기여했던 페도로프 장관은 빅테크 기업을 상대로 우크라이나의 메시지를 전하고 러시아에 반대하는 흐름을 이끌어내며 ‘테크 사절’로 톡톡히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페도로프 장관은 러시아의 침공 다음 날인 지난 달 25일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에게 공식 서한을 보냅니다. 이 같은 메시지가 담겼습니다.


"2022년 로켓과 미사일 그리고 탱크에 맞설 수 있는 최선의 해답은 혁신 기술에 있습니다. (애플이 러시아에 제품·서비스 판매를 중단한다면) 러시아의 젊은 층을 비롯한 깨어 있는 인구들이 러시아의 군사작전을 멈추게 하는 데 강력한 모티베이션을 제공할 것입니다."


4일 뒤인 이달 1일 애플은 러시아 내에서 제품·서비스 판매를 중단한다고 발표합니다. 페도로프 장관은 애플뿐만 아니라 구글, 메타, 넷플릭스 등 70여개 빅테크 기업에 러시아 내 영업 활동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보냈고 대다수의 기업이 이에 동참했습니다. 빅테크를 시작으로 맥도날드, 에스티로더 등 식음료, 소비재 기업까지 가세하면서 지난 15일 기준으로 러시아 내 영업 활동을 축소·중단한 기업은 400곳에 달합니다.


페도로프 장관은 우크라이나가 군사력에서는 열세지만 이번 전쟁이 단순히 군사력에 좌우되는 게 아니라고 봤습니다. 플랫폼을 선점하고 그에 따라 플랫폼을 이용하는 이들의 여론을 주도하면서 러시아 국민 여론까지 전환하도록 한다면 승산이 있다고 본 건데요. 그 역할을 최대 수십억명의 이용자를 확보한 빅테크에서 찾은 겁니다. 이전에는 국가별 이해관계에 따라 국가 단위의 경제 제재가 결정되면 기업이 이를 따르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죠. 하지만 이제 기업들이 저마다 제재 범위와 대상을 정하고 이 범위가 제품과 서비스를 쓰는 생태계까지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페도로프 장관의 행보를 통해 이 같은 양상을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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