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원계획 없이 청사진만…미래세대 '빚 수렁'에 나라는 벼랑끝

[공약, 거품을 걷어내라]
<1>공약 재설계하자 - 왜 재검토해야 하나
정교한 플랜 불분명, 부처간 '성과경쟁 행태' 재연 가능성
기초연금 100만원 인상·GTX 신설 등 포퓰리즘도 수두룩
경상수지 위기 속 국가채무 폭증…재정중독부터 벗어나야

윤석열(왼쪽 네 번째) 대통령 당선인과 안철수(〃 다섯 번째) 인수위원장 등이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인수위원회에서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현판식을 하고 있다. 권욱 기자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전문가들은 공약 구조 조정을 한목소리로 촉구했다. 재원 조달 방안이 불분명하고 초박빙 선거를 치르면서 포퓰리즘 성격의 공약이 대거 포함됐다는 우려에서다. 특히 미국 금리 인상 등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과 악화 일로인 국가 채무를 고려해 임기 초부터 재정 만능 주의에 선을 긋는 것이 시급하다는 조언도 나왔다.


◇재원 계획 없는 공약은 결국 ‘나랏빚’=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내세운 공약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의견이 많았다. 윤 당선인이 발표한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이 포함되지 않았다. 지난 2012년 18대 대선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가 소요 재원과 이를 어떻게 마련할지 공개한 것과 대조된다. 당시 박 후보는 공약 이행에 필요한 131조 4000억 원을 마련하기 위해 예산 절감, 지출 구조 조정(71조 원), 세제 개편(48조 원), 복지 행정개혁(10조 6000억 원), 기타 재정수입 확대(5조 원) 등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정교한 스케줄을 마련하지 못한 공약이 적지 않다는 반성의 목소리도 당내에서 나온다. 구체적인 계획도 없는 공약을 임기 초부터 섣부르게 추진하면 되돌리기 힘든 국가적 부담만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이던 비정규직의 정규직도 그랬다. 문 대통령은 취임 다음 날 인천공항을 방문해 정규직화의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하지만 5년 동안 중구난방으로 추진된 정규직 전환 정책은 막대한 후유증만 남겼다.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371개 공공기관 임직원 정원은 문재인 정부 출범 전인 2016년 32만 8479명에서 지난해 4분기 현재 44만 3570명으로 11만 5091명 늘어났다.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이 344개 공공기관의 채용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들어 공공기관 비정규직 중 정규직으로 전환된 인원은 지난해 7월 기준 총 10만 2138명으로 집계됐다. 공공기관의 실적과 내실은 반대로 부실해졌다. 공공기관 전체의 당기순이익은 2016년 15조 7000억 원에서 2020년 5조 3000억 원으로 3분의 1로 줄었고 부채는 같은 기간 500조 3000억 원에서 2020년 544조 8000억 원으로 증가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역대 정부를 살펴보면 재원 방안이 뒷받침되지 않은 공약은 결국 나랏빚에 의존해 추진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없으면 대통령 핵심 공약이라는 이유로 부처와 공공기관이 성과 경쟁에 뛰어드는 행태가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포퓰리즘 공약 수두룩=초박빙 선거를 치르면서 포퓰리즘 성격의 공약이 대거 포함된 것도 문제로 꼽힌다. 기초연금 10만 원 인상(35조 4000억 원), 병사 월급 200만 원으로 확대(25조 5000억 원), 부모 급여(7조 2000억 원) 등 재정이 직접 투입되는 공약이 수두룩하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연장·신설(5조 원)은 타당성 평가 통과 여부조차 불확실하다. 섣부르게 추진을 강행했다 무산될 경우 지역 주민의 반발만 키워 제2의 가덕도신공항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국민들의 관심이 큰 주택 250만 가구 공약 역시 5년 임기 내내 달라붙더라도 실현을 장담하기 어렵다. 과거 노태우 정부 때 주택 200만 가구 조기 건설에 나섰다가 건자재 파동에 부실 아파트, 막대한 토지 보상비 등 대란이 벌어진 바 있다.


오히려 유권자 반발이 두려워 미뤄 놓았던 공약을 과감하게 국정 핵심 과제로 내세워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고갈 위기에 놓인 국민연금 등 4대 연금 개혁이 대표적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4대 공적연금 장기 재정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현 제도가 유지될 경우 오는 2055년 수령 자격이 생기는 1990년생은 국민연금을 전혀 받지 못하게 된다.


◇국가 채무 급증재정 중독도 경계=국정 과제를 확정하기에 앞서 재정 만능 주의부터 벗어나는 게 급선무라는 조언도 있다. 국가 채무 비율이 급증하는 현실을 감안해 과도한 재정이 소요되는 공약은 과감하게 수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올 2월 16조 9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 통과로 올해 관리재정수지는 110조 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 5년간 관리재정수지 누적 적자는 400조 원을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박근혜 정부(129조 8000억 원), 이명박 정부(98조 8000억 원)의 3~4배다. 예정처의 ‘중기 재정전망’ 보고서를 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윤 당선인의 임기 중인 2025년에 61%를 기록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36%였던 국가 채무 비율이 2배 가까이로 폭증한 셈이다.


대외 환경이 급변하는 점도 부담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을 비롯해 우크라이나 전쟁과 공급망 붕괴 등 지정학적 요인이 겹치면서 ‘쌍둥이 적자(경상수지와 재정수지 모두 적자 상태)’에 대한 위기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종화 고려대 교수(한국 경제학회장)는 “국제통화기금(IMF)도 대규모 지출과 관련해 현 정부는 재정 타당성을 검증하는 부분을 매우 약화시켰다는 지적을 했다”면서 “재정 투입은 미래 세대에 부담을 안기는 선심성 공약 대신 투자와 근로 의욕을 높이는 생산적인 부문에 집중하는 원칙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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