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발 ‘번아웃’ 덮친 IT업계] "하루 회의만 10번"…2년새 '언택트 미팅' 250% 급증

빠른 디지털전환 뒤에 감춰진 이면
2년 전보다 비대면 미팅 252% ↑
개인 업무시간 확보에 어려움 겪어
야근·주말근무도 늘며 번아웃 속출
MS "韓 번아웃 가장 심각" 지적도




국내 한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일하는 10년차 마케팅 담당 직원 이모(37) 씨는 코로나19 이후 하루 내내 회의에 끌려 다니는 게 일상이 됐다. 출근 시간인 오전 9시부터 30분~1시간씩 진행되는 미팅이 많게는 하루 10개 넘게 잡혀 퇴근 시간까지 쉴 새 없이 회의만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 씨는 “미팅 일정 소화하느라 막상 개인 업무는 볼 시간이 없다”며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밀린 일들을 처리하곤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로 비대면 업무가 도입되며 시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덕분에 불필요한 이동 시간이나 사무 공간이 사라져 기업 입장에선 업무 효율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반대로 직원들은 일과 삶의 경계가 무너져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전환이 가장 빠른 IT 업계가 일찍이 협업툴을 적극 도입한 탓에 극대화된 업무 효율성이 ‘번아웃(심신 탈진)’을 양산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20일 IT 업계에 따르면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가 발표한 ‘2022 업무동향지표’에 따르면 업무 방식이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전환된 이후 직원들의 업무 시간도 비례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가 본격화된 지난 2020년 2월 대비 2년 이후인 올 2월 기준 MS 협업툴 팀즈에 집계된 미팅 시간은 주간 평균 252% 늘었고 횟수로는 153% 뛰었다. 또 2020년 3월 대비 하루 근무 시간은 13%(46분) 증가했고 야근 등 시간 외 근무와 주말 근무도 각각 28%, 14% 늘었다. MS는 전 세계 팀즈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첫 미팅 또는 첫 메시지부터 마지막 미팅·메시지 시점을 따져 근무 시간을 계산했다고 설명했다.



마이크로소프트 2022 업무동향지표에 따르면 2020년 3월 대비 2022년 2월 기준 미팅 횟수는 150% 늘었고 근무 시간은 13% 증가했다.

MS는 앞선 보고서에서 한국 근로자들의 번아웃이 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2021 업무동향지표에 따르면 국내 직장인 58%가 “기업의 높은 생산성에 지친다”고 답했다. 번아웃 항목에서 글로벌 평균은 39%, 아시아 평균은 36%였다. 여기에 IT 업계가 특히 업무 과중에 시달린다는 조사 결과도 있어 국내 IT 기업에서 번아웃을 호소하는 직원 비율은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IT 웰빙 플랫폼 ‘여보(yerbo)’에서 내놓은 ‘2022 기술 부문 번아웃 현황’ 리포트를 보더라도 전 세계 IT 근로자 가운데 62%가 신체적, 감정적으로 지쳤다고 응답했다. 번아웃 위험이 높은 개발자 가운데 42%는 “향후 6개월 내 회사를 그만둘 것을 고려한다”고 답했다. 이 리포트는 IT 기업들이 번아웃을 해결하지 않으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직원들의 잦은 결근과 이직으로 부작용이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내 한 인터넷 기업 직원인 김모 씨는 “코로나 이전만 해도 직접 만나서 하는 미팅이 대부분이어서 하루 내내 회의한다는 건 물리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며 “그런데 이제는 화상회의를 하면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으니까 시도 때도 없이 미팅이 잡힌다”고 말했다. 또 다른 IT 기업 직원도 “해외 사업이 많아지며 더 고통스러워지는 측면도 있다”며 “시차 때문에 아침 일찍이나 저녁 늦게 미팅을 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식사 시간이랑 겹쳐서 밥도 거르고 일하는 날도 있다”고 토로했다.


MS는 가벼운 사안은 회의 보다 이메일, 채팅으로 해결하게끔 하고 직원들이 개인 업무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사내 일정 관리에 ‘블록(block)’ 설정을 하는 등 유연하고 지속가능한 업무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아예 미팅을 하지 않는 ‘미팅프리 데이’를 정하거나 미팅과 미팅 사이에 10~30분씩 쉬는 시간을 반드시 두도록 원칙을 정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MS는 직원들이 번아웃에 시달리는 것은 구조적인 원인이 크기 때문에 개인 보다 기업이 나서 근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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