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21일 전격적으로 6·1지방선거 부산시장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불출마뿐만 아니라 정계은퇴까지 못 박았습니다. 선거 당락여부를 떠나 현 여권에 부산시장에 가장 가까운 인물을 꼽으라면 김 전 장관을 빼놓을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그랬던 이의 정계은퇴 소식은 갑작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나이 80이 가까워도 이쪽 저쪽을 저울질하고, 파란색 점퍼를 입었다가 돌연 빨간색 점퍼를 입는 정치권의 속성을 떠올려 보자면 당락 여부 만이 김 전 장관의 정계은퇴 이유는 아닐 것입니다. 김 전 장관은 정계은퇴 선언을 하며 “인생은 짧고 할 일은 많다”고 했습니다. “새로운 항해를 시작한다”고도 했습니다. 불출마나 정치를 그만 한다는 글귀보다 ‘할 일이 많다’는 그의 말에 주목을 해보고 싶습니다.
20대 대선이 한창이던 지난해 겨울 기자는 김 전 장관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 김 전 장관은 이미 부산시장 불출마를 단단하게 마음 먹고 있었습니다. 그때도 김 전 장관은 정계은퇴 선언문과 같이 “거대담론의 시대가 아니라 생활정치의 시대가 됐다”며 “나는 거기에 적합한 정치인인가”라고 물었습니다.
불출마라는 발언을 내놓고 이어 김 전 장관은 ‘지방소멸시대’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한 해 20만에 가까운 인구가 수도권에 몰려드는데 주택 공급정책을 내놓은 들 백약이 무효”라고도 했습니다. 지방은 소멸하는데 수도권은 주택부족으로 아우성 치는 현실에 근본적인 변화의 물꼬가 필요하다고 말할 때 눈빛은 빛났습니다.
실제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는 부산은 25년간 인구가 50만명이 감소했습니다. 부산은 총인구, 합계출산율, 고령화율, 가구구조, 지방소멸위험지수 등 주요 인구지표가 모두 부정적인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 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더 많았고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75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지난해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김 전 장관은 참담했을 겁니다.
부산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현재 대한민국에 인구감소 지역은 89곳에 달합니다. 전국적입니다. 수도권 일극체제를 벗어나 전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지 않고서는 선거때마다 공염불이나 다름없는 주택공급 공약은 반복될 수 밖에 없습니다. 시장이나 대통령마저도 수도권 집값 잡기에 매달리고 있지만 전국 대부분은 소멸의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김 전 장관의 눈빛은 그 근본적인 변화가 없이는 정치를 계속할 이유가 없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가 정치를 시작했을 때로 잠시 돌아가봅니다. 김 전 장관은 김영삼 정부에서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81년 고려대 영문과에 입학한 뒤 84년 부활한 총학생회 첫 회장에 당선돼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다가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의 비서로 발탁돼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그가 지난해 펴낸 <고통에 대하여>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해 놓고 있습니다.
<나이 스물여섯에 나는 상도동계 사람이 되었다. 내 발로 찾아간 선택이었다. 목적도 분명했다. 당시 민추협 공동의장이던 김영삼은 직선제 개헌 투쟁의 상징적인 인물이었으므로 나는 이곳에서 힘껏 전두환과 싸우기로 결심했다.···바로 민주산악회였다. 정권의 정치 사찰에 맞서 “산에도 못 가냐”로 맞선 것이다. 민주산악회 깃발을 따라 사람들이 산에 모였다. 산에서 울분을 토하고 민주주의를 외쳤다. 조국의 산하를 걸으면서 저항을 맹세하고 희망을 염원했다. 산에서 사람들이 강해져 갔다. YS도 마찬가지였다>
정치를 시작할 때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게 아니라 산에서 울분을 토하며 희망을 염원했습니다. 이번에는 어떨까요. “선거만 있으면 출마하는 직업적 정치인의 길을 더이상 걷고 싶지는 않다” 하나같이 선거가 다가오면 출마부터 생각하는 ‘출마병’에 걸린 뭇 정치인들에게 울림을 주진 않을까요.
이번에는 <고통에 대하여>로 돌아오겠습니다. 해당 책의 첫 머리에는 <과거 기준으로 최소한의 삶은 보장되겠지만, 현재 기준에서는 최소한의 삶이 보장되지 못한다.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오늘날 인간의 정치라면, 도대체 정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니, 정치란 무엇인가>
그는 2008년 총선불출마를 선언하고 잠시 여의도를 떠나 있던 때 ‘사람중심’의 세상을 꿈꾸며 인본경제연구소를 출범시켰습니다. 흔한 정치인들의 사람장사하는 모임이기보다 인기없는 인문학 연구모임에서 시작했습니다. 이후 부산에 내려와 인본사회연구소로 사단법인화 한 뒤 평회원으로 지금도 문화탐방과 인문·경제·사회 연구를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김 전 장관은 무엇을 찾고 있을까요. 그는 인본사회연구소의 설립 취지를 헌법 제10조에서 찾은 바 있습니다.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그는 자서전 격인 <고통에 대하여>의 집필 이유를 <41년 동안의 역사를 다시금 하나씩 살펴보면서 그리고 오늘날 우리 민초들이 겪는 고통의 원인을 추적해 우리가 무엇을 잘했으며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기억해내고 그 답을 찾고자 한다>했습니다. 결국 그 답을 찾아 다시 돌아오리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