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출발은 남달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말미암아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따로 인수위를 만들 시간조차 없이 대통령에 취임했고 곧바로 정부가 꾸려졌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겠다” “야당은 국정 운영의 동반자”라는 취임사에서의 공언은 허언이 돼버렸고 그 후로 5년간의 인사는 전문성을 무시한 철저히 자기 편 사람들만을 골라 쓰는 내로남불 인사의 연속이었으며 조국 사태로 그 정점을 찍었다. 임기 초 박근혜 정부 사람이라고 찍힌 사람들은 갖은 수모 끝에 온갖 방법을 동원해 자리에서 끌어내려졌고 그중 몇몇은 비참한 최후를 맞기도 했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정상적인 선거 과정을 통해 당선 후 두 달여간의 권력 이양기가 있고 지금 인수위원회가 꾸려져서 활동하고 있다. 앞으로 5년간의 정책 목표를 설정하고 새로운 정부 조직과 그곳에서 일할 인재들을 고를 시간이 생긴 것이다. 반면 이 두 달은 신구 권력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기존 청와대와 정부에서 겪었던 국정 운영에 대한 경험을 잘 정리해서 새로이 들어설 대통령과 정부에 인수인계를 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형세가 잡음 없는 인수인계를 바라기는 어려울 듯하다.
정권 임기가 한 달여밖에 남지 않은 지금 문재인 정권은 자신들의 사람을 한국공항공사·한국마사회·한국원자력안전재단·한국수력원자력 등 공공기관·공기업 요직에 꽂아 넣는 낙하산·알박기 인사를 강행하고 있다. 우리와 협의해 달라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 제안에 5월 9일까지의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다는 답변을 했다. 새로운 정부에 협력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새 부대에 쉬어빠진 헌 술을 섞겠다는 것이다. 이런 임기제 자리는 정권이 바뀌어도 쉽사리 바꾸기 어렵다. 박근혜 정권에서 임명된 산하 기관 임원에게 사표 제출을 요구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직권남용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이 새 정부에서도 적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은행 총재나 감사원 감사위원 자리도 현 정부에서 임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임명직과는 달리 감사위원 자리는 전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고 새 정부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일과 직결돼 있다. 한은총재 자리도 정권과는 상관없는 중립적인 자리이지만 새 정부의 경제를 이끌어가는 일에 직결돼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 에너지·원자재 가격 파동 등 외부적인 악재와 기록적으로 높은 인플레이션,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라는 각종 난제를 당면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한국은행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이달 말로 한은 총재의 임기가 끝나게 되면 청문회 등 인사 절차를 고려할 때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한은 총재의 공석이 생길 수 있다. 문재인 정부하에서 한국은행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예컨대 부동산 문제로 온 국가가 시끄러웠을 때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한은 내부적으로도 인사 문제로 잡음이 나온 적도 있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새 정부를 맞아 유능한 총재를 임명해 한국은행이 새로이 도약할 좋은 기회이다. 신구 권력이 기 싸움을 할 때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탄핵 정국으로 지금 윤 당선인 측이 겪는 권력 이양기에서의 신구 권력 갈등을 경험하지 못했다. 점령군이 폐허가 된 점령지에 들어와 마음대로 깃발을 꽂았던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이나 부동산 문제 등 문재인 정권의 잘못된 정책들 뒤에는 불공정하고 비상식적인 인사가 그 근본적인 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전문가가 아닌 자기 쪽 사람만을 가져다 쓴 결과이다. 오죽하면 윤 당선인의 공약 중에 전문가를 적재적소에 사용하겠다는 상식적인 이야기가 새롭게 들릴 정도인가. 현 정권은 이제 떠나는 길에서라도 새 정부와 협력해 상식적인 인사를 하기 바란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도 마찬가지이다. 새 정부에서 새로운 곳으로 이전하고자 한다면 협조해주는 것이 당연하다. 이는 신구 세력 두 최고 책임자 간에 직접 만나서 해결을 봐야 한다. 다른 선진국들처럼 신구 권력의 아름다운 권력 이양을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