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이번에는 신임 한국은행 총재 인사를 놓고 충돌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3일 “문 대통령이 한국은행 총재 후보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을 지명했다”고 발표했다. 청와대는 “윤 당선인 측의 의견을 들어 내정자를 발표하게 됐다”며 이번 인사가 일종의 ‘화해 제스처’라는 점을 부각했다. 하지만 윤 당선인 측이 즉각 한은 총재 인사에 대해 “청와대와 협의하거나 추천한 바 없다”고 부인하면서 진실게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문 대통령이 이 국장을 새 한은 총재 후보로 지명한 데 대해 감사원 감사위원을 현 정부 인사로 임명하기 위한 명분 쌓기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감사원의 의사결정기구인 감사위원회는 총 7명의 감사위원으로 구성되는 데 현재 두 자리가 공석이다. 현직 5명 가운데 3명은 문 대통령 측이 임명한 인사여서 공석 2명 중 한 명이라도 현 정부 성향이 분명한 사람을 임명하면 위원회 구도를 현 정부와 가까운 인사가 다수인 4대 3으로 만들어 놓을 수 있다. 이럴 경우 차기 정권에서 감사원이 문재인 정부에 대해 감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이런 의도를 갖고 신임 총재를 지명했다면 매우 옹졸하고 잘못된 판단이다. 새 정부에서 일할 사람들을 물러나는 정권에서 임명하면 국정 운영에 훼방을 놓는 격이다. 특히 현 정부 핵심 인사들의 비위를 감추기 위한 감사 방해 의도가 깔렸다면 국정 농단에 가깝다. 감사위원 인사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사이의 갈등의 골을 메우는 일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문 대통령이 계속 정권 교체기에 알박기 인사를 고집한다면 새 정부와의 갈등만 증폭시키고 더 큰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정권 말 인사권 행사에 집착하지 말고 정권 인수인계에 협조하는 게 상식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