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이 꺼낸 루블화 결제카드…큰 그림은 달러화 흠집내기 [김영필의 3분 월스트리트]

푸틴이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루블화 결제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들었다. 연합뉴스

2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증시의 주요 지수는 국제유가가 다시 오름세를 보이면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각심에 일제히 하락했습니다. 이날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1.29% 내린 것을 비롯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과 나스닥이 각각 1.23%, 1.32% 떨어졌는데요. 게임스탑이 14.5%가량 폭등하면서 밈주식이 다시 주목받기도 한 날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유가와 인플레 모두 지속하고 있는 이슈이긴 한데요. 그날 그날 상황에 따라 증시의 방향성을 설명하는 근거가 되고 있는 듯한 모양새이긴 합니다.


어쨌든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특별한 결정을 하나 내놓았는데요. 앞으로 유럽연합(EU)과 미국 등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수입할 때 돈을 루블화로 받겠다는 겁니다. 달러나 유로화 대신 루블화로 결제하라는 건데요. 국제유가를 넘어 국제 금융질서에도 영향을 주려는 시도인 만큼 그 배경이 무엇인지와 이날 나온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인사들의 발언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당하기만 하던 푸틴의 역습…유럽, 가스 도매가 15~20% 급등

우선 푸틴의 구상을 알아보죠. 푸틴 대통령은 이날 “서방국가들이 단체로 자신들의 통화에 대한 신뢰를 훼손했다”며 “우리 상품을 EU와 미국에 공급하고 달러화나 유로화 등으로 대금을 받는 것이 우리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밝혔는데요.


앞서 미국과 EU가 러시아 은행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퇴출하기로 하면서 러시아는 가스대금을 달러나 유로화로 받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꺼낸 카드가 이것이죠.


정확한 개념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유럽 에너지 기업들은 러시아산 가스를 받아 오는 대신 알아서 루블화로 환전, 대금을 지급하게 되는 꼴이 될 텐데요. 이렇게 되면 루블화에 대한 해외 수요가 높아져서 루블화를 안정화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됩니다. 실제 푸틴 대통령의 발언 이후 루블화 가치는 7%가량 상승한 달러당 98루블에 거래됐는데요. 월가의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가스 결제를 루블화로 하게 되면 해외에서의 루블 수요가 증가하는 만큼 통화안정을 기대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현재 유럽은 가스 사용량의 4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올 들어서도 하루 2억~8억 유로 정도를 수입하고 있는데요.



푸틴 대통령의 루블화 결제카드는 1차로 루블화의 안정화를 위한 것이다. 타스연합뉴스

결제수단을 바꾸라는 것은 수입하는 쪽 입장에서는 리스크입니다. 현재 독일과 폴란드 등 주요 국가는 이를 계약위반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리투아니아는 수입을 끊겠다고도 했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러시아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이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러시아와의 에너지 거래에 대한 불안정성이 더 커지고 있죠.


그 결과 가스값이 폭등하고 국제유가도 덩달아 뛰는 건데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푸틴 대통령의 발언 뒤 유럽의 가스 벤치마크인 TTF가 한때 19% 폭등했다”며 “브렌트유 가격도 5% 올라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섰다”고 했습니다.


다만, 푸틴의 강수가 되레 유럽의 탈러시아 현상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요. 이렇게 된 바에야 아예 러시아산을 쓰지 말자고 할 수 있다는 것이죠. 비니시우스 로마노 리스타드 에너지 컨설팅의 선임 애널리스트는 “유럽의 구매자들을 러시아 가스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하는 작업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미 러시아는 달러와 유로화를 받는 자국 기업들에게 수익의 80%를 루블화로 교체할 것을 지시한 바 있는데요. 이를 고려하면 20% 정도 더 조치를 강화하는 수준이어서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가즈프롬, 가스 매출의 58%가 유로·39%가 달러…성공 땐 달러흔들기 실패 시 고립 혹은 블록화·대결구도로

그럼에도 러시아가 이 카드를 내민 것은 달러화 중심의 금융질서에 어떻게든 영향을 주겠다는 의도가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국영회사 가즈프롬에 따르면 1월27일 현재 이 회사의 천연가스 매출의 58%가 유로화로 결제됐고 39%가 달러화였습니다. 유로화 비중이 높은 것은 유럽 거래가 많기 때문인데요.


러시아의 루블화 결제는 유로화와 달러 사용을 그만큼 줄이게 됩니다.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중심으로 넓게 봐서 유로화와 엔화 등으로 대표되는 서방의 결제시스템과 금융질서에 반기를 드는 것이죠.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달러에 의존하는 기존의 세계질서로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분명히 했을 겁니다. 러시아의 외환보유고도 마음껏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죠.


그래서 푸틴의 큰 그림은 달러화와 유로화에 대한 의존도 감소, 더 나아가 흔들기가 목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이슨 투비 캐피털 이코노믹스 선임 신흥시장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의 움직임은 루블화를 지탱하고 서방의 금융시스템 의존도를 줄이는 게 목적”이라고 했는데요.


러시아의 이번 시도가 성공할지는 불투명합니다.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주요 유럽국가가 계약위반이라고 하고 있지요. 러시아가 이렇게 해달라고 해도 손님들이 됐다고 하면 그걸로 끝입니다.



푸틴의 더 큰 그림은 서방에 대한 금융의존도를 줄이고 달러화 패권에 흠집을 내겠다는 데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만에 하나 러시아의 카드가 성공한다면 달러 흔들기가 가능합니다. 미 동맹들 사이에서의 분열도 나올 수 있는데요. 반대로 실패한다면 러시아는 한층 더 고립의 길로 가게 되겠죠.


다만, 이 고립의 길에 중국이라는 처지가 비슷한 나라가 있습니다. 중국은 미국과 대만문제, 무역·기술 등에서 경쟁하고 있는데요. 앞서 중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원유 위안화 결제 문제를 얘기하고 있다는 WSJ의 보도도 나왔습니다. 두 나라의 연대가 가능한 것이죠.


미국도 가만히 앉아 있지는 않는데요. 백악관이 이날 “중국이 러시아의 대금 결제를 도와주는지 수출통제에 반하는 시도를 하는지 면밀히 살필 것”이라며 “중국 기업이 러시아에 반도체를 팔면 문을 닫게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뒤집어 보면 러시아와 중국의 연대 가능성을 강하게 경계하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미국의 압박에 벌벌 떨지는 미지수인데요. 북한이 강력한 경제재제에도 버티고 있는 것도 중국의 비호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대로라면 세계 경제도 과거 냉전 때처럼 블록화할 가능성이 있는데요.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 원자재를 루블이나 위안화로 결제하고 중국산 수입품도 같은 방식으로 한다면 달러화 비중은 계속 줄겠죠. 앞으로는 이 부분, 즉 블록화와 달러패권, 미국의 대응이 어떻게 될지를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연준 내서 잇따르는 0.5%p 목소리…“美, 여름께 코로나 사람들 의식서 희미해질 것”

국제유가가 불안정하고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연준 내에서도 0.5%포인트 금리인상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요.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이날 블룸버그TV에 “만약 우리가 0.5%포인트를 해야 한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면서 5월에 0.5%포인트를 올릴 필요성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도 “지금부터 7월까지의 모든 회의를 미리 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는 늦기보다는 더 공격적으로, 더 일찍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다”며 “나는 우리가 몇 번의 0.5%포인트 인상을 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지요.


지금의 분위기는 5월 0.5%포인트 쪽으로 기울고 있지만 아직 허들이 남아있습니다. 시간이 한 달 여 정도 남은 만큼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는데요. 데일리 총재는 “대차대조표 규모를 줄이면 또다른 금리인상의 효과가 있을 수 있다”며 “(5월에) 0.25%포인트 인상도 잠재적으로 찬성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상황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짚었습니다.



연준 내에서 5월 0.5%포인트 인상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넘치는 일자리와 코로나19의 감소는 미국 경제가 금리인상을 버틸 수 있다는 근거로 쓰인다. AFP연합뉴스

어쨌든 미국 소비의 발목을 잡던 코로나19는 갈수록 위력이 급격하게 약해지고 있는데요. 스콧 고틀립 전 식품의약국(FDA) 국장은 “올 여름이면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코로나19가 옅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방역 쪽에 무게를 두는 앤서니 파우치 소장도 “BA.2 바이러스가 곧 지배종이 될 것”이라면서도 “이것이 환자 수의 폭증을 불러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죠.


이같은 경제활동 재개와 넘치는 일자리는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질 것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의 또다른 요소가 되고 있는데요. 국채수익률 평탄화와 역전, 여기에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인상에 미국이 경기침체로 갈 수 있다는 얘기에 대한 반론으로 쓰이는 겁니다.


조나단 골럽 크레디트 스위스 수석 미국 주식 전략가는 “명확히 국채 수익률 곡선은 경기침체를 예상하는 좋은 도구지만 3개월과 10년물 국채금리를 보면 합리적인 수준의 차이가 난다”며 “또 10년 만기 채권금리가 계속 오르는 것을 보면 경기침체보다 인플레이션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아직 침체를 확정짓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단언했습니다. 경기침체 논쟁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어제자 ‘3분 월스트리트’를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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