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가격인상' 딜레마 빠진 보일러업계

러 수출길 막히고 원자재값도 폭등
환차손 리스크 악재까지 겹쳤지만
석달전 가격 올려 추가 인상은 부담
우크라전 장기화땐 실적 악화 불가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본격화 되면서 국내 보일러 업계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보일러 업계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 거의 10년만에 보일러 제품 가격을 인상했지만 추가적인 가격인상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최근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 보일러 제품 가격에 원자재 값 인상분을 반영하는 게 쉽지 않아 각 업체들은 눈치만 보고 있다. 더욱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될 조짐을 보이면서 환차손 리스크와 추가적인 원자재 가격 폭등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보일러 업계는 대책마련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27일 보일러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가 러시아에 수출한 난방용 보일러 규모는 4521만 달러(약 559억원)로 2020년 3521만 달러(약 436억원) 대비 28.4% 증가했다. 러시아는 국내 보일러 업체에 북미 다음으로 큰 시장이다. 국내 보일러 제조 업체들이 러시아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이유다.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국가가 러시아를 스위프트(SWIFT·국제금융결제망)에서 퇴출하고, 핵심기술과 부품수출도 규제하기로 하자 국내 보일러 업계는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보일러가 수출통제 품목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물류난으로 인한 수출 악화 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러시아로 향하는 항공과 해운 등이 막혀 있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면 보일러 업계가 타격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일러 업계의 한 관계자는 “보일러 기업들 대부분이 러시아 현지법인에 재고 물량이 있긴 하지만 지금처럼 물류에 어려움을 겪는 현상이 지속되고 현지법인 물류가 소진되면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 될 경우를 대비해 해결책을 고심하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러시아가 스위프트에서 배제됨에 따라 루블화 가치 하락에 따른 피해도 예상된다. 일반 중소기업들은 러시아 바이어에게 물건을 납품하는 반면 보일러 기업들은 러시아에 현지법인이 있어 이를 통해 직접 제품을 판매하고 루블화로 거래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의 신용등급이 떨어지면서 전쟁이 끝나더라도 러시아의 현재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루블화 가치가 회복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신용평가사 피치는 러시아의 등급을 종전 ‘BBB’에서 ‘B’로 낮추고 ‘부정적 관찰대상’으로 분류했다.


보일러 업계의 고민은 대 러시아 경제제재 뿐만 아니다. 원자재 가격 인상도 보일러 업계에 시름을 더하고 있다. 경동나비엔, 귀뚜라미, 린나이, 대성쎌틱에너지스 등은 지난해 연말부터 최근까지 보일러 가격을 평균 10% 가량 인상했다. 지난 10년 가까이 가격을 올리지 않았던 보일러 업계가 가격 인상을 시행한 배경에는 지난해 3분기부터 급등한 원재료 가격 영향이 크다.


흑파이프, 스텐파이프, 철판, 코일철판 등 보일러 원자재 가격은 지난해 3분기 기준 전년 대비 최고 86%까지 폭등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전년대비 지난해 3분기 보일러 원자재 가격은 △흑파이프(본당) 1만7351원→2만9856원 △스텐파이프(1kg) 5052원→6105원 △철판(1kg) 742원→1380원 △코일철판(1kg) 749원→1365원 등으로 인상됐다.


보일러 원재료 가격 상승은 철광석 시세 인상이 가장 큰 원인이다. 지난해 11월 1톤당 89달러(10만9000원)였던 철광석 가격은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이달 11일 기준 159달러(19만5000원)로 치솟았다. 보일러 업계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 가격을 인상한 만큼 당장 원자재 인상분을 제품가격에 반영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보일러 제조업체의 한 관계자는 “국내 보일러 시장은 한계가 있어 해외시장 개척이 무척 중요한데 그 중에서도 날씨가 추운 러시아는 보일러 수요가 많은 곳”이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되면 물류문제와 원자재 상승, 루블화 가치 하락 등에 따른 많은 피해가 예상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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