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백화점이 자체 ‘아트 페어’를 선보이며 미술품을 중심으로 한 예술 비즈니스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대형 국제 이벤트와 연계한 연례 행사로 규모를 키워 국내 미술 시장에서 입지를 다져나간다는 계획이다. 신세계(004170)백화점이 미술품 경매 업체에 지분을 투자하고 온라인 경매를 펼치는 등 선수를 치고나간 가운데 롯데백화점이 오프라인 아트 페어로 맞불을 놓으며 ‘유통가 아트 전쟁’의 불꽃 튀는 서막이 오르고 있다.
28일 유통 업계 및 미술계에 따르면 롯데백화점은 5월 13~15일 열리는 ‘제11회 아트 부산’ 기간에 맞춰 자체 아트 페어를 개최한다. 아트 부산은 ‘휴양과 예술’을 연계한 미국의 ‘아트바젤 마이애미’를 벤치마킹해 2012년 첫선을 보인 후 급성장 중이다. 지난해 판매액 350억 원, 방문객 8만 명 이상 등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올해는 21개국 132개 갤러리로 진용을 꾸려 지난해(110개)보다 규모를 더 키운 가운데 참가 해외 갤러리도 33곳으로 지난해 대비 2배 가까이 늘었다.
롯데백화점은 행사 기간에 롯데호텔이 운영하는 ‘시그니엘부산’에서 별도의 ‘롯데 아트 페어’를 열 계획이다. 통상 국제적인 아트 페어가 열리면 메인 행사를 중심으로 개최 도시나 인접 지역에 20여 개의 위성 전시나 페어가 동시에 열린다. 국내외 주요 갤러리와 컬렉터들이 집결하는 만큼 다양한 작품과 기획을 선보이는 동시에 신규 정보를 획득할 기회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의 야심 찬 프로젝트는 지난해 백화점 신설 조직인 ‘아트콘텐츠실’에 영입된 미술전문가 김영애 상무가 주도하고 있다. 김 상무는 프랑스계 글로벌 화랑인 오페라갤러리의 서울디렉터를 거쳐 아트컨설턴트로 활동해 왔다. 김 상무는 서울경제와의 전화 통화에서 “아트 부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갤러리나 작가들에게 새로운 장(場)을 열어주고 싶다”며 “올해는 첫해인 만큼 공개 모집 없이 몇몇 갤러리들과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그니엘부산은 아트 부산이 열리는 벡스코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어 상당한 연계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 상무는 “디자인과 크래프트(공예)에 중점을 둔 프로그램으로 매년 행사를 진행하려고 한다”고 부연했다. 이어 김 상무는 “갤러리들이 잘하고 있는 시장에 대형 백화점이 끼어드는 구도가 아니라 더 많은 갤러리와 작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든다는 데 중점을 두려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이라는 지역이 갖는 남다른 의미도 있다. 부산은 롯데그룹에 홈그라운드와도 같은 곳이라는 점에서 부산 기반의 아트 페어 신설은 더욱 눈길을 끈다. 그룹 창업주인 고(故) 신격호 총괄회장은 일본 유학 전 20대 청년 시절을 부산에서 보냈고 1968년 롯데제과 부산 거제동 출장소 설립을 시작으로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 창단(1982년)과 백화점·호텔 설립을 이어가며 부산 기업 이미지를 다졌다. 현재 20개 넘는 계열사가 부산 지역에 진출해 있다. 김 상무는 “롯데는 국내외에서 다양한 카테고리의 사업을 영위하는 종합 그룹사”라며 “이 이점을 살려 ‘범롯데’의 시너지를 내는 방향으로 관련 사업을 전개해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롯데의 본격적인 참전으로 유통가의 ‘아트 비즈니스 전쟁’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주요 백화점들은 미술 시장의 성장과 소비 확대를 반영해 관련 부문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과거 미술을 프리미엄 마케팅의 일부나 단발성 이벤트로 활용했다면 이제는 ‘적극적인 투자 대상’이자 ‘사업 아이템’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온라인 쇼핑의 확산으로 ‘재화를 파는 장소’에서 ‘복합문화공간’ ‘물건을 안 사도 갈 수 있는 곳’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위기감도 백화점의 변화를 끌어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국내 1위 미술품 경매 업체 서울옥션 지분 4.82%를 280억 원에 확보한 데 이어 최근에는 자사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 디지털 아트 갤러리를 열고 업계 최초로 미술품 모바일 경매에 나섰다. 24일 열린 신세계 주주총회에서는 사업 목적에 ‘인터넷 경매 및 상품 중개업’을 추가하는 안건을 통과시키며 미술품 경매 사업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통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술품이 이제는 감상을 넘어 적극적인 투자의 대상이자 라이프 스타일의 일부가 됐고 문화 예술 소비에 적극적인 세대가 핵심 소비층으로 부상했다”며 “구매력 갖춘 고객을 확보하고 기존의 한정된 시장을 극복해야 하는 백화점에는 놓칠 수 없는 공략 대상인 셈”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