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빼곤 아무 것도 말할 수 없다”…43년 만에 떠나는 이주열 [조지원의 BOK리포트]

1977년 입행해 2022년 퇴임까지 43년
총재 연임에 금통위 회의 참석만 466번
작년 8월 인상 결정 가장 힘들었다 털어놔
경직된 사내 문화·직원 이탈 등은 아쉬운 점

“나에게 한국은행은 전부이고, 한국은행 빼고는 나의 어떤 것도 이야기할 수 없다. 나에겐 ‘BOK means everything to me(한국은행은 내 모든 의미)’다.” -한국은행 사보 ‘한은생각’ 3월호 인터뷰에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018년 4월 12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은행 회의실에 열린 금통위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호재 기자.

이주열 총재가 한국은행에 입사한 1977년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처음으로 1000달러를 넘었다며 자축했다. 1인당 GNI는 국민의 평균적인 생활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다. 그랬던 것이 지난해에는 3만 5168달러로 사상 처음 3만 5000달러를 돌파했다. 인구 5000만 명이 넘는 국가 가운데 여섯 번째다. 국내총생산(GDP)은 1977년 384억 5000만 달러에서 지난해 1조 7978억 달러로 45배나 확대됐다. 한국경제가 이렇게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동안 최전선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경제 상황을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했던 이 총재가 31일 퇴임한다.


총재 임명 전 잠시 떠나있던 2년을 제외하면 한은에서 일한 기간만 43년이다. 역대 최장수 근무이고 앞으로도 깨기 힘든 기록이다. 한은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 참석만 466번이다. 조사국장과 정책기획국장 등으로 171번(6년)이고, 부총재와 총재 등 당연직 금통위원으로서 금리를 결정한 회의만 295번(11년)이다. 정권이 바뀌고도 연임한 영향이다. 총재로 취임해서는 두 번의 정권에서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브렉시트, 미·중 무역갈등, 일본 수출규제 등 여러 난관을 겪었다.


임기 중 맞은 가장 큰 위기는 단연 코로나19다. 코로나19 직후 역성장하면서 경기 침체가 나타났는데 이후엔 집값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 등 금융 불균형이 문제가 되더니 이제는 인플레이션마저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됐다. 2020년 5월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치인 0.50%까지 낮췄다가 지난해 8월과 11월, 올해 1월까지 세 차례 금리를 올리면서 1.25%로 회복한 상태다. 주요국 중에서는 가장 먼저 금리를 올려 대응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제공=한은

이 총재는 최근 직원과의 대화에서 가장 힘들었던 금리 결정이 지난해 8월이라고 털어놨다. 당시까지만 해도 한은이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리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금통위 불과 이틀 전 조사에선 채권전문가 10명 중 7명이 금리 동결을 전망했다. 금리 인상 결정 이후엔 속도가 빠르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총재는 “금리 인상은 인기 없는 결정이고, 지난해 8월엔 미국 연방준비제도도 안 하고 코로나 해결도 멀었는데 왜 금리를 인상하느냐는 일부 비판 여론도 있었다”며 “그래도 우리는 경기 전망도 괜찮고 물가도 오를 거란 판단 하에 어려운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그때 정상화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면 지금 따라가기 힘들어 당황했을 것 같아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미 연준이 뒤늦게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는 만큼 선제적으로 금리 올려 코로나19 이전 수준까지 되돌린 것은 이 총재가 가진 경험적 판단이 유효했다는 평가다. 한 경제학자는 “여행도 마지막 3일이 좋으면 기억에 남듯이 최근 세 차례 금리 인상으로 이 총재의 통화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됐다”며 “미리 숙제를 끝내놓은 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에 불만을 나타낸 한은 노조 설문 조사에서도 통화정책만큼은 후한 평가가 나왔다.



2014년 6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이호재기자.

별관 신축 공사가 늦어지면서 임기 중 완공을 보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한은은 창립 70주년에 맞춰 2020년까지 통합별관을 신축한다는 계획을 세워 조달청에 위탁해 시공사를 선정했다. 하지만 이후 분쟁과 소송, 감사 등 각종 잡음이 생기면서 공사가 2년 이상 지연된 상황이다. 결국 이 총재는 통합별관을 보지 못하고 떠나게 됐다.


이 총재가 연임하면서 긴 호흡으로 통화정책을 추진하고 중앙은행 독립성을 지켰다는 건 큰 장점이지만 내부적으로는 한계도 나타났다. 먼저 이 총재 영향력이 점차 커지면서 한은 내부에서는 집행부와 다른 의견을 낼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일부 인사가 조직에 쓴소리해도 반응이 없자 정책 토론이 활발했던 사내 게시판에 어느샌가 글이 올라오지 않게 됐다는 후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폐쇄적이고 경직된 사내 문화가 더욱 굳어진 셈이다.


출신 학교에 따른 내부 갈등도 커졌다. 연대 경영학과 출신인 이 총재가 연대에 치우친 편중 인사를 해왔다는 것이다.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참석하는 주요 보직이나 해외 교육이나 파견 등도 연대 출신이 대부분이라는 불만이 쌓였다. 연대 출신 한 인사가 금융결제원장으로 내정되자 한은 노조가 나서서 반대할 정도였다. 금융결제원장 14명 중 13명이 한은 출신이었는데 결국 해당 인사가 낙마하면서 나머지 1명이 결국 금융위원회 출신 인사로 채워졌다. 반대로 연대 출신 직원들은 오히려 피해를 봤다고 반박한다. 한은 안팎에서 특정 학교 편중에 대한 지적이 나오니 연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했다는 것이다. 사실이 무엇이든 한은 내부에서 출신 학교에 따른 갈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지난해 3월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이주열 총재가 브리핑을 마친 후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성형주기자 2020.03.20

이직과 전직이 활발해진 시대적 흐름이라지만 직원 이탈도 아쉬운 점이다. 특히 4급(G4)과 5급(G5) 등 과장급 이하 젊은 직원을 중심으로 예전 같으면 가지 않았을 벤처캐피탈(VC)이나 핀테크·빅테크 등 다양한 곳으로 회사를 옮기고 있다. 회계사들은 5년 전까지만 해도 연봉을 낮추며 한은으로 왔는데 이제는 회계법인으로 다시 나간다. 이러한 직원 이탈 배경으로는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 수준이 지목된다. 한은과 산업은행의 평균 연봉 격차는 2016년 158만 원에서 2020년 1138만 원으로 확대됐다. 한 한은 전직 간부는 “우리나라 최고 브레인들을 한데 모아놓고 이들이 몇 년도 못 채우고 제 발로 뛰쳐나가는 데 막지 못한 건 정말 큰 문제”라고 아쉬워했다.


이 총재도 송별 간담회에서 “임금 수준과 관련해 직원들이 불만이라는 점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한은 직원 급여 수준이 비교 가능한 여타 기관보다 낮은 것도 사실”이라며 “재임기간 중 이를 개선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를 가까이서 본 직원들은 ‘까다로운 상사’였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기억력이 좋아 실무 담당자조차 모르고 지나친 일을 물어볼 때마다 속으로 놀랐다고 한다. 매사 신중한 모습을 기억하는 직원들도 많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안 건넌다’는 세간의 평이 맞다고 인정한 직원이 여럿이다. 업적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어도 그의 통찰력과 꼼꼼함에 이의를 제기한 직원은 없었다.


한국경제에 대한 헌신도 이견이 없다. 무엇보다 중앙은행에서만 43년을 근무한 점은 높게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익명을 요구한 한은 인사는 “총재는 금통위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한은 안팎에 있는 모든 일에 신경 써야 하니 솔직히 쉽지 않은 일(나라면 하라고 해도 안 할 것)”이라며 “60대는 인생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인생의 마지막 황금기인데 이 총재는 모두 국가 경제에 바친 셈”이라고 말했다.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경제학계 전반의 소식을 전하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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