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故 이예람 중사 2차 가해한 수사 관계자 추가 조사" 권고

고(故) 이예람 중사 부친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교육장에서 열린 전익수 공군 법무실장 공수처 고발 기자회견에서 발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인권위원회가 상관에 의한 성추행 피해를 신고한 후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고(故) 이예람 중사 사건과 관련해 수사 관계자 일부에 대해 추가 조사를 하라고 권고했다.


31일 인권위는 '군대 내 성폭력에 의한 생명권 침해 직권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전날 국방부 장관에게 권고한 내용을 발표했다. 인권위는 "'공군 성폭력 피해 부사관 사망사건' 발생부대 군 검사는 부대 관계자에게 피해자의 피해 상황 및 수사내용을 보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관련 부분에 대해 추가 조사를 하라"고 밝혔다.


이어 "피해 부사관의 국선변호인과 그의 동기 법무관들이 가입한 SNS에 성폭력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공유하며 대화를 나눈 부분을 비롯해 공군본부 법무실장이 압수수색 집행 전날 군사법원 직원과 통화한 부분에 대해서도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이 밖에도 인권위는 성희롱·성폭력 사건 후속 조치와 관련해 여러 방안을 제시했다. 인권위는 성희롱 성립 여부 판단에서 부대장의 재량권 일탈·남용을 예방하고자 외부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성희롱 고충심의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회의 자문 절차를 거쳐 판단하도록 '부대관리훈령'을 개정하라고 했다. 또 지휘관이 사건 인지 이후 적절한 분리 조치 및 2차 피해 예방을 위한 노력을 했을 경우에는 지휘 책임을 감면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제안했다. 아울러 민간인 신분인 성 고충 전문상담관의 업무 환경을 개선하고, 성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해 국선변호사를 모두 민간 변호사로 선임하는 방향으로 운영하라고 권고했다.


군 내 성 관련 사건의 2차 피해 예방을 위한 방안도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인권위는 우선 '부대관리훈령', '국방 양성평등 지원에 관한 훈령' 등에 2차 피해 정의 규정을 마련하고, 가·피해자의 성명과 기타 개인 신상정보는 기소 전까지 철저히 익명 처리돼야 한다고 했다. 또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비밀유지의무 위반 행위에 대한 징계양정을 '군인·군무원 징계업무처리훈령'에 별도로 규정하도록 했다.


성폭력 피해자의 신상보호를 위해 청원휴가 기간을 최장 180일까지 허용하는 방향으로 개선하고, 성폭력 피해자에게 적용되는 가·피해자 분리와 청원휴가 사용 등 2차 피해 방지 규정이 성희롱 피해자에게도 확대 적용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하라는 권고도 나왔다. 이와 관련해 인권위는 "성폭력 피해자의 청원휴가 기간을 최장 180일까지 허용하는 제도가 사건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를 방치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성폭력 사고 예방을 위해선 ▲ 대대장급 이상 지휘관 복무계획보고 복무중점 사항에 '인권증진' 항목 추가 및 해당 항목에 '성폭력 사고예방 활동' 계획 포함 ▲ 사관학교, 부사관학교 등 초급간부 양성 교육과정에 인권교육 정규과목으로 편성 등을 권고했다.


이번 직권조사는 인권위가 지난해 8월 유족 측으로부터 해군 성폭력 피해 부사관 사망사건과 관련한 진정을 접수해 조사에 착수한 것이 발단이 됐다. 당시 인권위는 군 내 성희롱·성폭력 문제가 전 군에서 잇달아 발생하는 상황을 고려해, 조사 대상을 해군 이외에 육·공군까지 확대하는 직권조사를 하기로 의결한 바 있다.


인권위는 "군인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도중에 성폭력 피해를 입고 소중한 생명까지 빼앗기게 된 것은 개인에 대한 인간의 존엄성 침해를 넘어 국가가 군인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 주지 못한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라며 "향후에도 국방부 이행실태를 점검하는 등 군인의 인권보호와 증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군인권센터와 천주교인권위원회도 동참했다. 이들은 인권위 권고 발표 이후 성명을 내고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가 엉망이었음은 물론, 사건 수사가 공군본부 법무실장을 보호하기 위한 '성역 있는' 수사였음이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이어 "인권위가 추가 조사를 권고한 사안에 대한 재수사를 국방부에 맡길 수 없음은 분명해 보인다"며 "4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특검을 도입해 이 중사와 유족의 원통함을 씻어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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