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1일(현지 시간)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 외곽의 대통령 사저 앞에 운집한 수천 명의 시위대가 대통령을 향해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쳤다. 외환이 바닥나 석유와 석탄을 수입하지 못하게 된 스리랑카 정부가 하루 13시간의 단전 조치에 나서자 더는 참지 못한 국민들이 반정부 시위에 나선 것이다. 스리랑카는 현재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협의 중이며 인도에도 약 15억 달러의 신용차관을 요청한 상태다.
#브라질 증시는 최근 해외 자본 유입으로 활황을 맞았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브라질 증시의 보베스파지수는 3월 30일 12만 259로 마감해 지난해 9월 초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12%가 빠졌던 브라질 증시의 올 1분기 상승 폭은 14.5%에 달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각국 증시가 부진을 겪는 와중에 오히려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신흥국 경제에 대한 경보음이 울리고 있지만 신흥국들 사이에서도 양극화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신흥시장 전반을 둘러싼 경제 여건이 급속히 악화하는 가운데도 중남미 자원 보유국들은 오히려 해외 자본을 끌어당기며 외환·금융시장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자원 프리미엄을 누리는 신흥국가들이 전쟁의 반사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신흥국 경제 불안에 대한 경고는 곳곳에서 나온다. 마르셀로 에스테바오 세계은행 글로벌디렉터는 "관광이나 해외 송금에 의존하고 원자재 수입 비중이 큰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경제 전망이 더욱 어두워졌다"며 "지난 30년을 통틀어 가장 심각한 신흥국 부채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위험에 처한 국가를 직접 거명하지 않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집트 등 아프리카와 중동에서의 밀 수입 비중이 높은 일부 국가들을 주목했다. 밀 수입량의 80% 이상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의존하는 이집트는 전쟁 이후 물가가 치솟으면서 최근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기도 했다. 스리랑카의 사정도 비슷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스리랑카·이집트는 물론 터키·폴란드·체코·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도 전쟁에 따른 경제적 피해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자본 유출도 심각하다. 로이터통신은 레피니티브리퍼를 인용해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2월 24일부터 한 달 동안 신흥국 주식형 펀드에서 81억 달러, 채권형 펀드에서 57억 3000만 달러가 유출됐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스리랑카 루피화 가치는 올 1분기에 달러 대비 45%, 이집트 파운드화는 16%나 급락했다.
반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연합(UAE)·나이지리아 등 원자재와 식량이 풍부한 자원 수출국으로는 자본이 유입되고 있다. 브라질의 경우 달러 대비 헤알화 가치가 1분기에 14.90% 급등했다. 브라질은 원당과 대두(콩)·소고기·닭고기 생산과 수출에서 모두 세계 5위권에 드는 자원 부국이다. 원유와 철광석·희토류도 주요 수출 품목이다.
세계 최대 곡물 생산국 중 하나인 아르헨티나도 밀과 옥수수 등의 물량을 확보하려는 국가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주문과 자본이 몰리면서 라틴아메리카 대기업 40곳에 투자하는 아이셰어스MSCI라틴아메리카40ETF(ILF)는 최근 한 달 새 11.5%나 상승했다. 미국 초우량 기업 30곳에 투자하는 SPDR다우존스산업평균ETF(DIA)의 상승률(3.6%) 대비 4배 수준이다.
부채에 허덕이는 탄자니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부진했던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가 100억 달러에 달하는 추가 투자를 유치하며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사미아 술루후 하산 탄자니아 대통령은 최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에퀴노르ASA와 셸이 주도하는 LNG터미널 건설에 대한 2단계 협상이 6월까지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자원 보유국도 결국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국제금융연구소(IIF)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중남미는 식품과 유가 상승 상황에서 수익을 내고 있지만 전쟁과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가 더욱 격화할 경우 모든 신흥국 시장에서 자본 유출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대다수 신흥국들이 미국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대비해 일찌감치 금리를 올렸다는 점도 부담이다. 미국과 보조를 맞추기 위한 추가 금리 인상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인더밋 길 세계은행 부사장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전쟁의 여파"라며 “이는 신흥국 정부가 내부 정책 조정으로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