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일 제74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 “4·3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온전한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윤 당선인은 보수 정당 출신 대통령 및 당선인 최초로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했다. 윤석열 정부의 국민 통합 기조가 첫발을 뗐다는 평가다.
윤 당선인은 이날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추념식에서 영령에 참배·묵념하고 “희생자들의 영전에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생존 희생자들의 아픔과 힘든 시간을 이겨내 온 유가족들의 삶과 아픔도 국가가 책임 있게 어루만질 것”이라며 “무고한 희생자들을 국민과 함께 따뜻하게 보듬고 아픔을 나누는 일은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당연한 의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곳 제주 4·3 평화공원이 담고 있는 평화와 인권의 가치가 널리 퍼져나가 세계와 만날 수 있도록 새 정부에서도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윤 당선인은 추념사를 마친 뒤 연단 앞 양쪽으로 나눠 앉은 희생자 유가족들을 향해 각각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추념식 행사가 끝난 뒤에는 단상 기준 오른쪽으로 퇴장하며 유가족 30여 명과 악수를 나눴다. 유족 중 한 70대 여성은 윤 당선인에게 편지를 건네기도 했다. 윤 당선인은 참석 의미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너무 당연한 것 아니겠나”라고 답했다. 윤 당선인은 추념식 폐막 공연에서 배우 박정자 씨가 4·3 사건 당시 가족을 모두 잃었다는 강춘희(77) 씨의 사연을 독백 공연 형식으로 재연하자 침통한 표정으로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오늘 이 행사만을 위해 (제주도에) 왔다”며 “원래 총리 후보자 인사 발표가 오전에 있어야 되는 건데, 유족들과 약속을 지키고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했던 영령들을 기리는 게 당선인에게는 더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윤 당선인은 2월 5일 대선 후보 시절 제주 강정 해오름마을을 방문했을 당시 ‘당선이 되면 4·3 추념식에 참석하겠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당연히 오겠다”라고 답한 적 있다.
대통령 당선인이 4·3 추념식에 참석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새 정부 출범 시기가 5월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4·3 사건 발생 55년 만에 정부 차원의 첫 사과를 했고 2006년 추념식에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참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에 이어 2020년·2021년 추념식에 왔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추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윤 당선인이 후보 시절부터 강조해온 국민 통합 기조의 첫 행보를 제주도에서 시작한 셈이다.
윤 당선인과 함께 추념식에 참석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행사 종료 이후 기자들과 만나 피해 보상 문제와 관련해 “당선인께서 인수위에서 이 과제를 다루실 것이라 생각한다”며 “어쨌든 저희 국민의힘이 4·3에 있어 전향된 행보를 시작한 후로 한 번도 성사되지 않았던 보수 정당 출신의 대통령 당선인 방문이었기 때문에 앞으로 급물살을 타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제주 4·3 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올해 하반기부터 보상금을 신청한 4·3 사건 희생자들에게 1인당 9000만 원이 균등 지급될 예정이다. 윤 당선인은 이에 더해 4·3 희생자 및 유가족들에 대한 보상·지원을 확대할 방침이다. 윤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 △법률·제도·예산 등 다방면의 4·3 희생자 지원 △희생자·유족 복지 증진 △4·3 추모제를 국가적 문화제로 승화 등을 공약한 바 있다.
4·3 희생자 유가족 및 제주 시민들도 윤 당선인의 참석에 기대감을 표했다. 오임종 4·3희생자 유족회장은 추념사에서 “한 달 후면 대통령에 취임하는 윤 당선인님이 추념식에 참석해 영령을 추모하겠다는 약속을 지켜 함께 해주심에 감사하다”며 “4·3 문제 해결 공약을 인수위에서부터 국정 과제로 채택해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 국민 통합 시대를 여는 대통령이 돼 달라”고 당부했다. 제주에서 30년 넘게 택시를 몰았다는 김 모(62) 씨는 “지금까지 한나라당·새누리당 이름만 바꿨지 대체 누가 제주에 신경을 써줬느냐”며 “윤 당선인이 말하는 국민 통합이 빈말이 아닐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