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제노사이드 저질렀나…'부차 대학살'에 국제사회 공분

[러軍 떠난 키이우 인근서 민간인 시신 410구 발견]
"용납할 수 없는 전쟁 범죄"
美·유럽 등 강력 제재 예고
獨, 러 가스수입 중단 주장
우크라 "2500건 의혹 중 하나"
희생규모 빙산의 일각 분석도
유엔 "진상 규명"조사 지시

우크라이나 키이우 인근 도시인 부차에서 3일(현지 시간) 러시아군에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민간인 시신들을 현지 당국이 검은 봉투에 담아 임시로 수습한 모습.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인근에서 러시아군에 ‘집단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민간인 시신 수백 구가 발견되면서 국제사회가 공분에 휩싸였다. 각국은 ‘민간인 학살은 용납할 수 없는 전쟁범죄’라며 일제히 비난의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고 유엔은 민간인 학살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까지 시사해 이번 ‘만행’이 국제사회의 단죄를 받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와 관계된 대부분의 무역 관계를 사실상 단절시키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포함한 고강도 추가 제재 논의에 즉각 착수했다.




3일(현지 시간) 키이우 인근에서 총 410구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각국 정상들은 즉각 러시아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고 서방 언론들은 참혹한 현장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나섰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러시아는 용납할 수 없는 범죄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지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번 사태에 대해 “무고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러시아의) 야비한 공격”이라고 규정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희생된 민간인 사진을 보면 매우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는 “(민간인 학살 현장은) 전쟁터가 아니라 분명한 ‘범죄 현장’”이라고 맹비난했다.


앞서 우크라이나 검찰은 러시아에 점령됐다가 수복한 키이우 인근 지역에서 자국 민간인 시신이 무더기로 발견된 사실을 공개했다. 현지 검찰에 따르면 키이우 북서쪽으로 37㎞가량 떨어진 도시 부차에서만 시신 300구를 수습하는 등 키이우 인근에서 총 410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CNN 등은 부차의 한 교회 앞마당에서 집단 매장터로 보이는 길이 14m의 구덩이가 민간 위성 업체 맥사테크놀로지의 위성사진에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확인된 희생 규모가 ‘빙산의 일각’이라는 분석도 나오면서 희생자 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검찰은 이번 민간인 집단 학살이 자신들이 파악한 러시아의 전쟁범죄 의혹 총 2500개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발견된 민간인 희생자 가운데 일부는 손이 뒤로 포박된 상태에서 총살됐다는 증언이 속속 나오고 있다. 부차 지역의 한 주민은 “(러시아군은) 보이는 사람을 닥치는 대로 총으로 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말살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상 규명 결과에 따라 이번 사태가 ‘최악의 전쟁범죄’로 꼽히는 제노사이드로 규정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제노사이드는 특정 집단을 절멸시킬 목적으로 해당 구성원을 대량 학살하는 행위로,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후에도 1970년대 200만 명의 희생자가 나온 캄보디아 크메르루즈 사태,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인종 청소’ 등의 사례가 반복되며 역사의 오점으로 기록됐다.


러시아는 학살 의혹에 대해 “우크라이나 측이 서방 언론에 제공하려 연출한 것”이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해 이를 논의하자고 강변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이런 주장의 신빙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효과적인 책임 규명을 보장하기 위해 독립적인 조사가 필수”라며 유엔 차원의 조사 착수를 시사했다. 블링컨 장관 역시 “러시아의 전쟁범죄와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사안이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돼도 법원의 집행력이 없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관련자들의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와 별도로 서방의 추가 제재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정부가 러시아와 거래를 이어가는 국가까지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간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광물과 운송·금융을 제재 범위에 포함하는 방안도 논의 테이블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산 가스 수입 제재를 망설여왔던 유럽의 태도도 달라졌다. 크리스티네 람브레히트 독일 국방장관은 “유럽은 즉각 러시아 가스 수입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5일부터 사흘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및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회의에서 러시아 추가 제재안이 의제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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