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같은 정적, 노래로 채워달라"…젤렌스키, 그래미서 '反戰 메시지'

■그래미서도 화두된 우크라이나
연설 영상 이어 특별공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제64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특별 화상연설을 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로이터연합뉴스

3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그랜드아레나를 수놓은 제64회 그래미 어워즈는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출연 외에도 화제가 될 이야기들을 많이 남겼다. 그 중 가장 큰 감동을 안겨 준 것은 우크라이나로, 러시아의 침공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위한 특별 공연이 열렸다. 전 세계 대중음악인들이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당시부터 반전(反戰) 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역사를 돌이켜보면 당연한 움직임이었다.


시상식의 절반 이상이 흘렀을 무렵, 행사장 중앙의 모니터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등장했다. 생중계 연결이 아닌 사전 녹화된 연설 영상이었다. 그는 “음악과 상반되는 것은 무엇인가. 파괴된 도시와 죽은 사람들의 침묵”이라고 자문자답하며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지금 우크라이나엔 음악이 흐르지 않고 죽음의 적막만 흐른다고 호소했다. 이어 “우리 음악인들은 턱시도 대신 방탄복을 입는다”며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해 병원에서 노래를 부른다”고 전했다.


젤렌스키는 “우리는 삶을 살아가고, 사랑하고, 소리를 낼 자유를 지키고 있다”며 폭격으로 끔찍한 침묵을 가져오는 러시아에 맞서 우리 땅에서 싸우고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죽음과 같은 정적을 당신들의 노래로 채워달라.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정적을 채워달라”며 “당신의 소셜 미디어, TV에서 전쟁에 관한 진실을 말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침묵 대신 당신이 할 수 있는 방법들로 우리를 지원해달라. 그러면 평화가 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이날 연설은 최근 우크라이나 소도시 부차에서 발생한 민간인 집단학살 등 러시아군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한 국제사회 비난 여론이 들끓는 상황에서 이뤄져 더욱 눈길이 쏠렸다.


젤렌스키의 사전녹화 연설이 끝나자 무대에 설치된 피아노 앞에 가수 존 레전드가 등장했다. 그는 자신의 노래 ‘프리(Free)’를 우크라이나 가수 미카 뉴튼과 함께 불렀다. 공연 중간 뒤편 화면으로는 우크라이나 국기 등이 등장하며 응원과 반전의 메시지를 전했다.



한국계 미국인 바이올리니스트 제니퍼 고가 3일 제64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AP연합뉴스

한편 이날 시상식에서 한국계 음악인도 수상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베스트 클래시컬 인스트루먼털 솔로’를 수상한 한국계 미국인 바이올리니스트 제니퍼 고가 그 주인공. 지난해 시상식에서 한국계 미국인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수상한 상과 같은 부문이었다.


제니퍼 고는 이번에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예술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젝트 앨범 ‘얼론 투게더’(Alone Together)로 상을 받았다. 같은 이름의 온라인 공연 시리즈를 바탕으로 한 앨범으로, 젊은 작곡가들에게 의뢰한 곡들과 유명 작곡가들이 기증한 짧은 신작들로 구성됐다.


제니퍼 고는 지난 1994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 1위 없는 2위를 수상하며 주목 받기 시작했으며,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상' 등을 수상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