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과 러시아 간 우주탐사 협력이 중단되면서 영국이 1조원 이상을 들여 제작한 화성 생명체 탐사 로버가 아예 발사조차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3일(현지시간) 유럽우주국(ESA)은 지난달 17일 러시아와 함께 추진해온 화성 탐사 '엑소마스' 미션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엑소마스 미션에는 영국이 지난 15년간 8400만 파운드(약 1조3400억 원)을 들여 제작한 화성 생명체 탐사 로버 '로절린드 프랭클린'호가 포함돼 있다.
영국의 DNA 구조 연구 선구자인 로절린드 프랭클린 이름을 딴 이 탐사로버는 화성 표면에 착륙한 뒤 땅속 2m의 시료를 채취해 과거 또는 현재의 생명체 존재 가능성을 알아볼 예정이다. 문제는 엑소마스 미션의 발사 임무와 로절린드 프랭클린의 화성 착륙 과정에서 러시아가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다는 점이다.
로절린드 프랭클린은 오는 8~10월 러시아 연방우주공사(로스코스모스)의 프로톤 로켓으로 발사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ESA와 러시아의 협력 중단으로 화성과 지구의 공전 궤도 위 위치 등을 고려해 결정될 다음 발사는 일러야 2년 후인 2024년 여름에나 가능하게 됐다.
일부 천문학자들은 발사가 계속 지연될 경우 이번 탐사 계획 자체가 보류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영국 개방대학 천문학자 존 자네키 교수는 "현 상황에서 러시아와의 협력은 상상할 수 없다"면서도 "엑소마스 발사가 2020년대 말까지 지연될 수 있는데 그때쯤이면 엑소마스 기술은 시대에 뒤떨어진 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로절린드 프랭클린을 화성 표면에 착륙시키는 카자초크 착륙선도 러시아가 제공한다는 점 역시 문제다. 카자초크 착륙선은 낙하산과 역추진로켓으로 탐사로버를 화성 표면에 부드럽게 착륙시키는 역할을 한다. 탐사로버에 탑재되는 파노라마 카메라의 수석 연구자인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앤드루 코츠 교수는 "탐사로버 착륙은 극히 까다롭고 복잡한 과정"이라며 "이를 대체할 착륙시스템을 설계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엑소마스에 참여하고 있는 글래스고대학 아인 오브라이언 박사는 "화성 생명체를 찾는 탐사가 이런 일을 겪는다는 것이 슬프다"면서도 "이런 차질은 우크라이나 국민이 겪는 고통에 비하면 너무나 사소한 것이어서 슬픔을 느끼는 것에도 죄책감이 든다"고 말했다.
한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피해를 보는 우주 임무는 엑소마스만이 아니다. 러시아가 궤도 유지 임무를 맡는 국제우주정거장(ISS) 운영과 러시아 로켓에 실려 발사될 예정이던 갈릴레오 항법 위성 2대, ESA가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와 함께 개발 중인 '어스케어' 미션, 유클리드 적외선우주망원경 등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