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대학이 주는 권력·돈에 투항한 '공공 지식인'

■마지막 지식인
러셀 저코비 지음, 교유서가 펴냄


“지식인이 내부로 침잠하여 그들만의 심오함을 물신화할 때 사라지는 건 비단 폭넓은 대중뿐만이 아니다. 바로 지식인 자신이다. 그들의 저작은 메마르고, 그들의 주장은 얄팍해지며, 그들의 영혼은 말라붙는다.”


최근 번역·출간된 ‘마지막 지식인’의 ‘2000년판 서문’ 일부이다. 학술·문화 비평가인 러셀 저코비가 1987년 쓴 이 책은 미국 사회에서 ‘공공 지식인’의 소멸 과정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공공 지식인은 ‘진보 지식인’이 아니라 교양 있는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발언하면서 자기 전문 분야가 아니라 사회 공론장에 영향을 끼치는 지식인을 뜻한다.


미국에서 35년전 출간됐지만 한국 사회 현실이 오버랩되면서 시의성 있게 읽힌다. 민주화 운동 시기 지식인의 표상이었던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의혹을 두둔하고 성 추행 의혹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장례위원장을 맡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어용 지식인’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권력자를 옹호하는 자신을 합리화한다.


미국 지식인 사회의 변모는 대학 팽창과 맞물린다. 1920년부터 1970년까지 인구는 2배 증가할 때 대학교수 자리는 10배로 늘었다. 반면 진지함을 추구하는 신문과 잡지 수는 꾸준히 줄었고 원고료도 제자리 걸음이었다. 젊은 지식인들에게 ‘글을 쓰며 먹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고 대학들은 이들 인재들을 빨아들였다.


1960년대 매카시즘 광풍이 사라지자 신좌파 지식인들마저 대학으로 대거 옮겨갔다. 지식인의 밥벌이가 글쓰기가 아니라 교수직이 되면서 그들은 자기들끼리만 읽는 논문을 쓰고 정년 교수직을 얻기 위한 학계 정치에 몰두했다. 특히 좌파 교수들 중에서도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이 대학의 정치적 활용도를 이유로 들며 대학이 주는 권력, 지원금, 영향력 등의 혜택을 가장 열렬히 수용했다.


저자는 “비합리적이고 과학하고 자유분방했던 60년대의 지식인들이 선대의 지식인보다 오히려 더 보수적이고 전문적이고 비가시적인 집단으로 성숙했다”고 비판한다. 이후 인문학자들이 사라진 자리의 공백은 스티븐 제이 굴드, 올리버 색스, 칼 세이건, 재러드 다이아몬드, 조너선 와이너 등 주로 과학자들이 메웠다.


옮긴이 유나영은 “지식인의 전문화·제도권화·학술화는 이제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한층 더 심화되었지 약화되지 않았다”며 “그럼에도 팬데믹과 기후 재앙 같은 전 지구적 위기들은 공공 지식인의 역할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고 적었다. 2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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