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재앙이 휩쓸고 간 자리, 정리·치유하는 사람들

■트라우마 클리너 ?세라 크래스너스타인 지음 열린책들 펴냄


‘반려동물 묵은 집 청소, 극도로 불결한 집 및 폐가 위생 청소, 살인·자살·사망 후 청소, 곰팡이·홍수·화재로 인한 손상 복구, 산업재해 청소, 감방 청소 등등’. 호주에서 ‘STC 특수 청소 서비스 전문회사’를 운영하는 샌드라 팽커스트의 명함 뒷면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보통 사람이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이런 극한 현장 일을 하는 그는 누구일까.


신간 ‘트라우마 클리너’는 호주 작가 세라 크래스너스타인이 60대 노인 샌드라의 일과 삶을 재구성한 책이다. 책은 샌드라의 일터를 따라가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부분과 샌드라의 일생 회상이 교차되면서 진행된다. 샌드라를 포함, 언급되는 모든 이야기 주체들은 각자 심각한 아픔을 품고 살았다. 샌드라는 남자로 태어났지만 중간에 여자로 성 전환(책에서는 ‘성 확정’이라고 표현)했다.


책 제목인 ‘트라우마 클리너’는 질병이나 사망 등으로 인해 엉망이 된 사람의 삶의 흔적을 정리하는 일을 말한다. 샌드라의 일터는 수십년째 쌓인 쓰레기로 가득한 집, 극도로 불결한 집, 저장 강박을 가신 사람의 집, 자살이나 화재 등 재난을 겪은 집 등 다양한 트라우마 현장을 전문적으로 청소하는 일이다. 저자는 “이 직업은 등뼈가 휘는 육체노동이자 영혼을 갉아먹는 일”이라고 말한다. 작자는 4년간 샌드라를 직접 따라다니며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애환을 담았다.


책이 단순하지 않은 것은 트라우마 클리너인 샌드라의 인생 자체가 트라우마에 갇혀 있다는 것은 알려주기 때문이다. 샌드라는 유년시절 입양돼 부모로부터 학대 받고 또 성소수자로서 차별과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 사람다운 삶을 살게 한 내면의 힘, 세상에 속하고자 하는 욕구 등이 샌드라를 지탱해주는 힘이었다.


샌드라는 맨손으로 쓰레기를 치우고 악취를 맡아도 찌푸리지 않는다. 이는 그 집의 주인이 수치심을 덜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객들에게 위로와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의 인생에서도 절실히 필요한 것이었다.


이와 함께 책은 트랜스젠더, 드래그퀸, 성노동자 등 20세기 후반의 호주 사회의 단면을 전개하고 있다. 샌드라의 삶이 단순히 개인 차원의 문제는 아니었다는 표현이다. 저자는 “트라우마의 반대가 트라우마의 부재는 아니다. 트라우마의 반대는 질서와 균형이다. 그것은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2만 3000원.


/최수문기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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