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가 된 골퍼와 그의 유산…오거스타, 마스터스, 그리고 우즈[골프 트리비아]

유일한 ‘그랜드 슬래머’ 보비 존스 이야기
주니어 시절엔 ‘천사의 얼굴에 늑대 성질’
첫 디 오픈 도전 땐 스코어카드 찢기도
깨우침 얻은 후 8년 동안 메이저 13승
명석한 두뇌로 기계공학·영문학·법학 전공
스스로 벌타 매기는 등 스포츠맨십 상징
강인한 정신력과 의지는 우즈와 닮은 꼴

초상화 옆에 선 보비 존스. AP연합뉴스

1937년 마스터스 당시 퍼팅을 하고 있는 보비 존스. AP연합뉴스

보비 존스와 4대 메이저 트로피. 조지아공대 아카이브

어린 시절 보비 존스. 이스트레이크 골프클럽 홈페이지

오거스타내셔널 골프클럽 로고 사이로 비친 타이거 우즈. AP연합뉴스

벚꽃은 봄의 상징이다. 팝콘처럼 터졌다 봄바람에 흩날리는 엔딩을 맞는다. 그러니 아쉽다. 벚꽃 같은 골프 인생을 산 인물이 있다. 짧은 기간 불멸의 기록을 남긴 데다 진정한 스포츠맨십의 표상이 돼 ‘골프 성인’으로 추앙받은 사나이, 보비 존스(1902~1971)의 이야기다.


존스는 골프 역사상 유일하게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선수다. 28세이던 1930년, 당시 4대 메이저 대회이던 영국·미국의 오픈과 아마추어 대회를 한 해에 석권했다. 5월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에서 열린 디 아마추어 챔피언십을 시작으로 디 오픈(6월), US 오픈(7월), 그리고 US 아마추어(9월)까지 휩쓸었다. 그러고는 두 달도 되지 않아 은퇴를 선언했다.


존스의 골프 인생은 7년간의 자기 싸움과 8년간의 영광으로 나뉜다. 1902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태어난 존스는 어린 시절 몸이 약했다. 부유한 변호사이던 그의 아버지는 유명 코스인 이스트레이크 옆에 집을 마련하고 아들에게 골프채를 쥐여줬다. 6세 때 골프를 시작한 존스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클럽 프로 스튜어트 메이든을 흉내 내면서 스윙을 익혔다. 천부적인 재능을 보인 존스는 14세 때 조지아주 아마추어 챔피언십 우승으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그해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에 출전했다.


당시 존스는 ‘골프 신동’이었지만 채 여물지는 못했다. 유명 스포츠 기자였던 그랜트랜드 라이스는 “보비는 키가 작고 통통한 아이였는데 천사의 얼굴과 늑대의 성질을 갖고 있었다”며 “미스 샷을 하면 화창하던 미소가 갑자기 먹구름을 품은 폭풍우로 바뀐다. 14세의 보비는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고 했다.


존스의 이러한 기질은 7년간 이어졌다. 1921년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열린 디 오픈 3라운드 때는 11번 홀에서 볼을 집어 올린 뒤 스코어카드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의 첫 디 오픈 참가였다. 존스는 훗날 “내 골프 인생에서 가장 불명예스러운 실패였다”고 회고했다. “그 당시 나에게 골프는 누군가를 이겨야 하는 게임이었다. 그때는 그 누군가가 나 자신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고도 했다. 존스의 유명한 가상 경쟁자인 ‘올드 맨 파’는 그런 깨우침에서 나온 듯하다.


폭풍우가 지나간 뒤 고요와 함께 기회가 찾아왔다. 1923년 US 오픈에서였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3개 홀을 남겨놓고 보기-보기-더블보기를 범해 동타를 허용했고 다음 날 18홀 연장전 끝에 메이저 첫 우승을 달성했다. 우승 물꼬를 튼 존스는 이후 거칠 것 없이 내달렸다. 1930년까지 8년 동안 메이저 13승을 달성했다.


존스는 명석한 두뇌도 갖고 있었다. 조지아공대에서 기계공학(1922년), 하버드대에서는 영문학(1924년) 학위를 받았고 1926년 에모리대 로스쿨에 들어간 뒤 변호사 시험을 통과했다. 그랜드슬램 달성 등으로 대스타가 된 그는 프로로 전향하면 막대한 돈을 벌 수 있었지만 영원한 아마추어로 남았다. 그에게 골프는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도전 그 자체였던 셈이다.


존스는 ‘골프의 정신’에도 충실했다. 1925년 US 오픈 1라운드 때는 어드레스 과정에서 러프에 있던 볼이 살짝 움직였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지만 스스로 벌타를 부여했다. 이로 인해 그는 최종일 동타가 된 뒤 연장전 끝에 패했다. 기자들이 이 일을 칭송하자 그는 “은행을 털지 않았다고 칭찬하느냐”고 반문했다. 이듬해 US 오픈 때도 그린에서의 미세한 볼 움직임을 자진 신고한 뒤 벌타를 받았다. 미국골프협회(USGA)가 주는 스포츠맨십상의 이름은 ‘봅 존스’다.


최정상에 있을 때 내려와 ‘신화’가 된 존스는 이후 오거스타내셔널 골프클럽과 마스터스라는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골프의 봄은 매년 4월 마스터스로 시작한다. 화려한 골프 인생을 보낸 존스는 말년에는 척수에 물이 차는 병 때문에 휠체어 신세를 져야만 했다.


존스는 “골프는 당신의 귀 사이 5인치(12.7㎝) 코스에서 이뤄지는 게임”이라고 했다. 우즈는 허리 수술로 걷는 것조차 불투명하다던 2019년 마스터스에서 우승했다. 존스는 드라이버와 퍼터를 잘 다뤘는데 그의 진짜 무기는 ‘우승에 대한 의지’였다고 한다. 우즈는 올해에는 다리를 절단할 뻔한 자동차 사고 후 14개월 만에 마스터스를 통해 복귀했다. 우즈 역시 존스와 같은 5인치 코스에서 경기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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