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바람이 더불어민주당에 다시 불고 있습니다. 대선 패배의 이유가 검수완박을 하지 못했기 때문인냥 누군가 바람몰이에 나섰습니다. 사실 ‘검수완박’은 진영 결집에 효능감이 높은 단어입니다. 검찰과 그 주변을 둘러싼 이해집단을 모두 기득권으로 몰아세울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당에는 만능키로 여겨질만도 한데 지난 대선에선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전 경기지사가 의심을 한 까닭입니다. 검찰에서 때어낸 권력을 경찰에 옮겨놓자니 경찰권력이 커지고, 새로운 사정기관을 설치하는 것도 마뜩치 않았습니다. 다만, 이 전 지사는 검사의 기소·불기소 재량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필요성에는 공감을 했습니다. 그게 다였습니다.
대선 기간 검수완박은 대선 캠페인으로 사용되기는 커냥 후보 연설문과 주변인들에게 언급이 거의 되지 않았습니다. 대선 직후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 체제가 들어선 초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검찰개혁이 기자들에게 전해진 것은 대선이 끝다고 딱 일주일 뒤는 3월 17일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럼 대선 이후인 3월 10일부터 민주당에 검수완박 바람이 불기 시작한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3월10일 대선 패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지도부가 총 사퇴한 뒤 윤호중 비대위원장 체제가 들어섰습니다. 11일 윤 비대위원장은 첫 의원총회 모두 발언을 통해 민생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코로나위기,우크라이나발 오일쇼크 등 위기 극복을 강조합니다. 검찰개혁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3월 14일 첫 1차 비상대책위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윤 위원장은 정치개혁과제와 코로나 피해극복, 대장동 특검, 민생개혁법안 점검을 강조했습니다.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민주당이 마지막으로 주어진 쇄신의 기회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공천쇄신 등을 강조했습니다.
당시 당 안팎에서는 윤호중 비대위원장의 자격을 두고 논란이 있었습니다. 대선패배의 한 축이었던 원내대표인 윤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을 맡을 자격이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아예 이재명 전 지사가 비대위를 맡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됐습니다. 윤 위원장은 선수별 의원 간담회를 통해 정면돌파해 나갔습니다. 3월17일 초선의원과 간담회 이후 조오섭 의원이 브리핑을 합니다. “국민들이 민주당에 요구하는 개혁과제인 검찰개혁 , 언론개혁, 정치개혁 등을 어떻게 추진할지 의견을 줬다” 공식적으로 검찰개혁이 언급된 첫 사례였습니다.
이어 3월 18일 부터 여의도 민주당 중앙당사앞에서는 ‘민주당 개혁을 위한 촛불집회’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이후 윤 비대위원장을 흔들던 당 안팎의 여론도 잦아들기 시작합니다. 24일 원내대표 선거에서 친이재명계인 박홍근 의원이 당선됩니다. 당시 원내대표 선거는 교황선출(콘클라베)방식으로 선호투표를 했습니다. 이때 이변이 발생했습니다. 원내대표 출마의사를 밝히지 않았던 최강욱 의원이 1차 선호 4명중에 한 명으로 호명됐다는 점입니다. 당내 강경파 초선 모임인 ‘처럼회’ 소속 의원들이 검찰개혁 의지를 보이기 위해 검찰개혁을 선두에서 외친 최 의원을 선호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습니다.
절실해졌을까요. 이때부터 박홍근 신임 원내대표뿐만 아니라 윤호중 위원장까지 검찰개혁을 부르짓기 시작합니다. 원내대표 선거 기간에도 검찰개혁은 화두가 아니었지만 최 의원이 4명 중 한명으로 호출되면서 검찰개혁에 무게를 둔 여론 흐름이 별안간 형성됐습니다.
최강욱 의원의 원내대표 호출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민주당의 검찰개혁 추진은 외곽에서 밀어붙이는 힘이 더 컸습니다. 검찰개혁 반대 의원에 대한 낙선운동까지 예고되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의원 명단이 적힌 리스트가 이른바 정보지(지라시)로 돌기 시작했습니다. 항의문자와 전화에 시달리던 일부 의원들은 페이스북 등에 “검찰개혁에 반대 한적이 없다”고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재명 전 지사 팬클럽 ‘재명이네 마을’에도 ‘낙선의원 명단’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관련글은 공통적으로 “(검찰개혁)반대자에 대해 공천 배제와 낙선운동을 불사한다”며 “열린민주당과 합당 조건이었던 ‘열린 공천’이나 직접 투표를 통해 낙선 운동을 진행할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온라인 뿐만 아니라 ‘민주당 개혁을 위한 촛불집회’는 “4월 중 검찰·언론 관련 입법을 강행처리하라”며 민주당 앞에서 노숙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해당 시위와 농성장에는 당내 강경파 의원들이 참석해 힘을 실어주며 지지세를 얻고 있습니다. 검찰이 보복수사로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전 지사를 겨냥할 것이기에 이들을 지키기 위해선 검찰개혁이 필수적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난감한 것은 당내 신중론을 내세우는 의원들이 기를 펴지 못한다는 겁니다. 지난 5일 의총에선 “유보적인 입장을 낸 게 지지자들에게 알려지면 ‘좌표’가 찍히고 공격을 받게 되니 실명을 밖에 알리지 말아 달라”는 실명 함구요청까지 있었지만 ‘의총5적’을 찾아내겠다는 강성 지지층의 문자폭탄은 여전히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제 민주당에 신중론은 온데간데 없고 검찰개혁에 ‘올인’해야 하는 당이 됐습니다. 민주당 입장은 오는 12일 예정된 끝장의총에서 최종 결정될 예정입니다. 이 상황에서 검찰은 11일 전국 검사장회의를 소집합니다. 그 좌장은 친여적이라고 평가받던 김오수 검찰총장입니다. 기시감이 느껴지진 않나요.
윤석열 검찰총장을 친여적이라 믿고 내세워 검찰개혁을 부르짓었던 게 불과 3년 전입니다. 검찰이 가진 기소권·수사권을 분리시켜 경찰에 권한을 더 하든, 아니면 중대범죄수사청을 새로 만들어 세우든 그 기관의 장은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윤석열 당선인이 임명합니다. 1차 검찰개혁이 윤석열 대통령을 만들었던 것처럼 2차 검찰개혁 역시 윤 당선인에겐 ‘꽃놀이패’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민주당은 지금 무엇을 위해 검찰개혁을 하자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