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술대 출신의 참전 용사가 한국전쟁에 투입됐을 당시 그렸던 스케치화와 수채화들이 70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캘리포니아미대에서 그림을 전공하던 22세 청년 병사의 그림에는 1951~1952년 복무한 강원도 시골에서 벌어졌던 처절한 전투와 마을 풍경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미국 비영리단체인 한국전쟁유업재단은 9일(현지 시간) 미국인 로저 스트링햄(93·사진) 씨가 당시 그렸던 그림 60여 점을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했다.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서 태어난 스트링햄 씨는 미대를 다니다 1950년 말 징집돼 이듬해부터 21보병사단 24연대 본부중대 소속으로 강원도 미 육군 보병사단에서 복무했다.
그는 복무 중 틈만 나면 강원도의 산과 풍경, 미군 동료들의 모습, 다양한 작전 활동을 화폭에 담았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던 전선에서 구할 수 있었던 그림 도구는 맥주·담배·치약·비누 등 보급품 상자 바닥에서 뜯어낸 종이와 연필 한 자루가 전부였다. 그가 고향 부모에게 편지를 부칠 때마다 한 장씩 동봉한 스케치는 어느덧 60점을 넘었다. 그는 “한국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동 받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그가 이후 70년간 자기 집에서 간직해온 그림들을 세상에 공개하게 된 계기는 올 2월 현재 살고 있는 하와이에서 한종우 유업재단 이사장을 만난 것. 국가보훈처의 지원으로 2012년부터 유엔 참전 용사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사업을 진행해온 한 이사장은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의 유해감식반 활동을 다루는 교육자료집 제작을 위해 하와이를 찾았다가 스트링햄 씨와 만났다. 마침 그림의 영구 보관 장소를 찾고 있던 스트링햄 씨는 유업재단 홈페이지에 한국전쟁 스케치와 수채화를 전부 옮겨놓는 게 “최고의 선택”이라며 한 이사장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70년도 넘은 옛일이지만 스트링햄 씨는 “아직도 악몽을 꾼다. 죽은 동료들을 찾는 꿈을 꾼다”고 털어놓았다. 인천에 내린 뒤 건물 하나도 보이지 않는 해변에서 갯벌을 걸으며 이동하던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강원도 화천호·금성 전투에 투입된 그와 동료 병사들은 혹독한 추위로 인한 동상으로 고생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했다.전쟁을 겪고 미국으로 돌아간 그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전공을 바꿔 물리화학을 공부한 스트링햄 씨는 100편 이상의 학술 논문을 쓴 상온핵융합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한국에서 열린 학회에도 여러 차례 초청된 그는 “과거에 완전히 부서진 나라의 과학기술 발전에 너무 놀랐다”면서 “인천공항, 서울의 마천루, 교통 시스템을 보면서 ‘믿을 수 없는 꿈을 꾸는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고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