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총재 없이 열리는 사상 초유의 금융통화위원회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이창용 한은 총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19일 열리기 때문에 이번 금통위는 참석할 수 없다. 따라서 금통위를 진행하는 의장은 지난달 금통위서 정한 대로 주상영 금통위원이 대신 맡는다. 주 위원은 한은이 지난해부터 기준금리를 0.50%에서 1.25%로 0.25%포인트씩 세 차례 올리는 동안 꾸준히 동결 의견을 낸 대표적인 비둘기(통화 완화 선호)다. 주로 소수의견을 내왔던 주 위원이 금통위를 이끌게 된 것이다.
당초 금통위 안팎에서는 주 위원 성향과 무관하게 이달 금리 인상은 어렵다는 관측이 나왔다. 총재가 없는 불확실한 상황이라면 금통위가 무리해서 금리 방향을 바꾸기보다 일단 동결하고 한 달 더 상황을 지켜볼 것이란 분석이었다. 금리 동결한 2월 금통위 의사록에서도 대외 불확실성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지켜보고 신중하게 대응하자는 비둘기파가 두 명으로 늘었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2월 금통위가 열린 당일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날이다. 전쟁이 현시점까지 이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웠던 시점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가 3월 정책금리를 올리면서 인상 사이클을 시작하리라는 것 정도는 전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책금리를 0.50%포인트씩 한꺼번에 올리는 빅스텝을 예고하면서 이 정도로 빠르게 긴축 속도를 낼지 몰랐다. 무엇보다 3월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1%로 10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면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매우 커졌다.
반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는 등 국제 원자재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성장 둔화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가계부채가 사상 최대를 기록 중인 가운데 기준금리를 올리면 소비 여력이 축소돼 성장은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물가는 오르는데 성장은 둔화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은 ‘난치병’이라고 불릴 만큼 대응이 쉽지 않다. 물가 상승을 제어하기 위해 긴축을 선택하면 경기는 어려워지고, 경기 침체를 막으려 완화정책을 쓰면 인플레이션이 확대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물가와 실업률만 동반 상승할 수 있는 것이다.
이토록 복잡한 정책 환경 속에 총재마저 없는 이번 금통위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다. 따라서 경우의 수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금통위원은 7명으로 구성되는데 5명 이상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 총재가 없더라도 남은 금통위원 6명이 금리를 결정할 수 있는 셈이다. 금리 인상 의견이 4명 이상이면 더 살펴볼 것도 없이 이달 금리는 1.50%로 오르게 된다. 반대로 동결 의견이 3명이면 인상 의견이 과반수가 되지 않아 금리를 1.25%를 유지한다.
통상적으로 의장은 의견을 미리 내지 않는다. 의장을 제외한 금통위원 6명이 돌아가면서 의견을 먼저 내고 3대 3으로 갈렸을 때 의장이 캐스팅보트(합의체 의결에서 의장이 가지는 결정권)를 행사한다. 1998년 한은 총재가 금통위 의장을 맡은 이후로 금리 결정 과정에서 캐스팅보트를 행사한 것은 2001년 7월, 2006년 8월, 2013년 4월 등으로 손에 꼽을 정도다. 총재 한 사람이 금리 결정 책임을 떠안는 부담을 막기 위해 가능하면 3대 3으로 의견이 대립하는 상황을 피하는 셈이다. 금통위 의사록을 익명으로 정리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번 금통위에서 주목해야 하는 상황은 의장 대행인 주 위원을 제외하고 금통위원 의견이 3대 2로 갈리는 경우다. 특히 금리 인상 의견이 3명, 동결 의견이 2명이 됐을 때다. 평소 주 위원이 낸 소수의견을 보면 이달에도 금리를 동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 동결에 손을 든다면 인상 3명, 동결 3명이 돼 부결된다. 그렇다면 결국 주 위원이 금리 동결을 결정하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주 위원이 의장 대행을 맡은 이상 다수 의견을 따를 가능성이 있다. 과거 박승 총재가 금리를 동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던 상황에서 다수 금통위원 주도로 금리를 내린 적이 있다. 이른바 ‘금통위의 반란’이라고 불린 당시 박 총재는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다. 이성태 부총재만 동결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홀로 냈을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금리를 올리면서 박 총재 생각이 맞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금통위 의장은 다수 의견을 따르게 되는 의사결정 시스템이 드러난 사건이다.
한은은 유례없는 총재 공백인 만큼 의장 대행이 의견을 낼지 정해진 규정이 없다. 이번에 주 위원이 의장으로서 의견을 낼지는 당사자에 달린 셈이다. 금통위 당일 간담회도 주 위원이 어떤 발언을 내놓게 될지 관심이 쏠린다. 어떤 결정과 발언이 나오든 이야깃거리가 많은 금통위가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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