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한달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약 30만 명의 러시아인이 러시아를 탈출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들은 전쟁에 대한 반대, 정부의 억압에 대한 두려움, 안 좋은 경제전망 등으로 '러시아 엑소더스(대탈출)'를 감행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엑소더스로, 중장기적으로 러시아 국가 경쟁력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1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인의 해외 이주를 돕는 비영리단체인 'OK러시안'의 3월 중순 나온 조사를 인용해 약 30만 명의 근로자들이 2월 말 전쟁 발발 후 러시아를 떠났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러시아를 떠난 사람이 50만 명인데, 이번에는 한 달도 안돼 30만 명이 러시아를 떠났다.
WSJ은 "러시아를 떠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 전문직 근로자"라고 설명했다. 실제 OK러시안의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를 떠나는 사람은 정보기술(IT) 업계 종사자, 과학자, 은행가, 의사 등이었다. 세부적으로 평균연령이 32세였고, 80%가 고학력자였다. 이들은 조지아나 아르메니아, 터키 등으로 이주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WSJ은 "러시아 관련 연구자들에 따르면 1917년 볼셰비키 혁명 때 수백만 명의 러시아 귀족층과 교육받은 중상위 계층이 신흥 공산국가로 탈출했는데, 현재의 탈출 속도는 그 때 이후 본적이 없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에도 수백만 명의 러시아인이 러시아를 등졌지만 여러 해에 걸쳐 일어난 일이었다. 시카코대의 콘스탄틴 소닌 교수는 "이러한 집중적인 이민 행렬을 지난 100년 이상의 기간 중 본적이 없다"고 평가했다.
'러시아 엑소더스'는 러시아 정부가 이주를 막기 위해 여러 조치를 꺼낸 가운데 나온 것이다. 러시아 정부는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러시아를 떠날 것을 권장하면서도 전문직 근로자의 이탈을 막기 위해 여러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IT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을 징집에서 면제해주는 정책에 서명했다. 또 이 부문에 일하는 사람에게 감세와 낮은 금리의 대출, 특혜 모기지도 제공하고 있다.
러시아인들이 러시아를 떠나는 것은 일단 전쟁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국영 항공사 에어로플롯의 부사장 출신 안드레이 파노프는 부사장직에서 사퇴하고 전쟁 발발 후 10일 만에 러시아를 떠났다. 현재 이라스엘에 있는 그는 "국영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출국했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펀익스펙티드의 공동 창업자 사샤 카질로도 최근 파리로 이주했다. 그는 그의 남편이 전쟁에 반대하는 스티커를 집 주변에 부착했다는 이유로 13일간 수감된 후 풀려나자 이주를 결심했다. 그는 "전쟁 전에는 러시아 내 상황이 바뀔 수 있고 러시아에서 우리 회사를 세울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며 "하지만 더 이상 그런 꿈을 꾸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러시아 경제에 대한 암울한 전망도 해외 이주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모스크바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해외로 회사를 이전할 계획인 한 사업가는 "러시아 시장 규모가 줄어들고 있고 외국인 투자도 감소했으며 외국 기술에 대한 접근성도 사라졌다"며 "심지어 아이디어 교환도 더 제한적이 됐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