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에 폭탄 숨겨두고 떠났다…러軍 퇴각 '잔혹 만행'

우크라 국기 찢고 컴퓨터 등 닥치는대로 쓸어가
약탈품은 택배 배송…가족과 훔칠 품목 전화도

지난 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리비우에서 러시아군 약탈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점령 중 국기를 찢고 시민들을 탄압하는 등 잔혹한 행위를 가하다가 퇴각할 때는 가정집에 폭발물을 숨겨두고 집기들을 트럭으로 실어 약탈해가는 등의 만행을 이어가고 있다.


영국 더 타임스는 11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주변에서 물러나면서 세탁기와 자동차 트렁크에 폭발물을 숨겨뒀다고 보도했다. 데니스 모나스티르스키 우크라이나 내무부 장관은 우크라이나 방송에서 "경찰관, 구조대원, 군인의 집에서 폭발물을 찾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민간인 학살 흔적도 곳곳에서 나온다. 키이우 인근 부조바의 한 주유소에선 시신 50구가 묻힌 무덤이 나왔다. 한 주민은 우크라이나 방송 인터뷰에서 길에서 50명 이상이 바로 앞에서 쏜 총을 맞고 사망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영국 가디언은 이날 러시아군이 조직적으로 약탈을 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시민인 나탈리아 삼손은 “러시아군이 점령했던 키이우 인근의 마을로 한 달 만에 돌아가 보니 집에선 향수, 포도주, 동전 수집품까지 사라졌고 학교에선 컴퓨터와 전자기기들이 없어졌다”며 “러시아군이 손에 잡히는 대로 트럭에 실었다”고 말했다.


키이우 외곽 이르핀에 사는 한 가족도 러시아군이 자신들의 집에 살면서 난장판을 만들어놨고 셔츠, 재킷, 드레스에 속옷까지 가져갔다고 증언했다.


가디언은 약탈이 개인의 일탈 수준이 아님을 시사하는 증거를 여러 곳에서 모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들은 우선 약탈한 물품을 택배로 러시아 곳곳에 보내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벨라루스의 탐사 보도 프로젝트인 하준이 확보한 2일자 영상을 보면 벨라루스 국경 마을에서 러시아 남부 한 가난한 도시로만 3000㎏ 상당 화물이 보내졌다. 영상에는 러시아 군인들이 TV, 자동차 배터리, 낚시도구 등 온갖 용품을 포장하는 장면이 담겼다.


러시아 특송업체 데이터에 따르면 하루에 440㎏를 보낸 군인도 있었다.


러시아 사회학자 알렉산드라 아르히포바는 러시아군 약탈은 그들이 이 전쟁이 무의미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애한테 필요하니까 컴퓨터를 가져가자'라고 생각하면 이 상황이 덜 이상하고 실리적으로 여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의 부카에서 묘지 직원들이 러시아와의 전쟁 중 숨을 거둔 이들을 수습하기 위해 관을 준비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이 공개한 전화통화 도청 내용을 보면 러시아 군인들은 부인들과 어떤 물건을 훔칠지 상의하기까지 했다. 이 중 부인 한 명이 "다른 군인들도 뭔가 가져올 게 분명하다"라고 말하자 그의 남편은 "모두 가방을 들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 해석으로는 집에 친러시아 낙서를 하거나 벽에 인분을 발라두는 등의 행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영국 텔레그래프지도 러시아군이 약탈에 그치지 않고 우크라이나 국기를 찢거나 신성하게 여겨지는 물건을 모독하는 등 문화를 지워버리려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러시아 편을 들도록 강요하고 고문하는 등 반대하는 주민들을 대하는 태도가 더 잔혹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군이 점령한 헤르손에 사는 20세 나스탸 나자리안은 텔레그래프지에 처음에는 반러시아 시위가 많았지만 점차 인원이 줄었고 마지막으로 시위에 다녀오는 길에는 근처에서 있던 사람이 백주대로에서 납치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차량 번호판에는 러시아 지지를 뜻하는 'Z'라고만 적혀 있었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침공이 계획대로 되지 않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측근들이 당황하면서 나치를 없애기 위해 침공한 것이라는 가식적 명분을 버리고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민간인 공격이 늘어나고 러시아 고위 관료들이 우크라이나 문화를 지워버리는 것에 관한 얘기를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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