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금융 사기. 검은 그림자는 도처에 존재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금고를 열 수 있다. 금융 범죄는 단순히 금전적인 피해를 넘어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절망과 자책을 심는다. 위험 속에서 나의 투자는 안전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아무도 믿지 마라: 암호화폐 제왕을 추적하다'는 추락하던 암호화폐 거래소 쿼드리가의 젊은 설립자 제럴드 코튼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분노에 휩싸인 투자자들이 그의 죽음을 의심한 사건을 그린다. 유일하게 암호화폐에 접근할 수 있는 제럴드 코튼이 사망하면서, 1억9,000만 달러의 행방이 묘연해진다. 거금을 투자한 투자자들은 텔레그램 방에 제럴드 코튼의 죽음을 의심하고, 그의 과거 행방에 대해 쫓기 시작한다.
점점 수면 위로 드러나는 쿼드리가의 비밀. 한 전문가는 끈질긴 추적을 통해 쿼드리가의 금고에 돈이 있지 않다는 걸 발견하고, 투자자들은 좌절한다. 또 숨겨져 있던 공동 설립자 마이클 패트린의 존재와 과거 금융 범죄 행적, 그리고 제럴드 코튼 역시 어렸을 때부터 연쇄 금융 사기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투자자들은 "그런 사람인 줄 알았으면 당연히 거래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투자자들은 무엇을 믿고 거액의 돈을 쿼드리가에 입금했을까. 제럴드 코튼의 실질적인 회사 운영 능력 대신 호감 가는 외모와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매혹된 것이다. 작품은 컴퓨터 뒤에 가려진 창업자의 배경과 신뢰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제럴드 코튼이 사기꾼이라는 게 밝혀지자 그의 사망을 둘러싼 음모론이 급물살을 탄다. 제럴드의 관이 닫혀 있던 점, 아내 제니퍼가 장례식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춘 점, 젊은 나이에 크론병으로 사망하기 힘들다는 점을 들어 제럴드 코튼이 살아 있을 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음모론의 끝은 허무하다. 제럴드의 관은 그저 닫혀 있던 거고, 제니퍼는 아일랜드식 장례 관습에 따라 술을 마시고 춤을 춘 거다. 또 젊은 나이에도 크론병이 급진적으로 발생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한 기자의 취재로 제럴드가 정말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지만 사람들은 의심을 멈추지 않는다. 제럴드가 살아 있어야 돈을 돌려받을 수 있기에 그의 죽음을 쉽사리 인정하기 어렵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멈추지 않을 거다.
그도 그럴 것이 제럴드 코튼은 단순히 돈만 가져간 게 아니다. 사람들의 인생 목표와, 꿈, 그리고 희망까지 앗아갔다. 누군가는 평생 동안 모은 돈으로 제2의 인생을 꾸리려 하고, 누군가는 노후의 안락한 생활을 바라며 쿼드리가에 돈을 넣었다. 희망을 꿈꾸며 투자했지만, 남은 건 절망이다.
금융 범죄의 피해자들은 다른 범죄의 피해자들 보다 자책하기 쉽다. "내가 바보라서 당했다", "조금만 더 알아봤으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비난하고 다른 사람들의 비난을 받기도 한다. 작품은 처음부터 철저하게 설계된 금융 범죄의 민낯을 파헤치면서 피해자들에게 "당신 잘못이 아니"라는 위로의 메시지를 건넨다.
◆ 시식평 - 실화에 기반한 이야기,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