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불안으로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와 미국의 금리 인상 압박 속에서 코스피가 3개월째 2600~2700선의 ‘박스피’에 갇혔다. 3개월간 국내에서 11조 7400억 원어치의 주식을 팔아치운 외국인투자가들의 거센 매도세 속에서 연초 3000선을 넘봤던 증시가 10% 이상 하락한 것이다. 코스피를 대표하는 기업 삼성전자의 주가 역시 연일 신저가를 새로 쓰며 개인투자자들을 심란하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불안한 조정기를 지나는 상황에서 국내 대표 운용사인 삼성자산·KB자산·한국투자신탁운용에서 주식 운용을 책임지고 있는 대표 펀드매니저(본부장) 3인을 만나 앞으로의 코스피 전망과 투자 전략을 물었다. 이들은 올해 코스피에 악재가 겹쳐 지난해처럼 3000을 뚫고 나가지는 못할 것으로 보면서도 하단 또한 2500~2600선으로 제한될 것으로 관측했다. 즉 2600~2700선을 맴도는 지금이 코스피 우량주를 ‘저가 매수’하기에 괜찮은 시간이라는 의미다.
◇올해 코스피는 ‘박스피’…5월 FOMC 후 반등할 것=최근 서울경제와 만난 서범진 삼성액티브자산운용 그로스본부장과 심효섭 KB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 정상진 한국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올해 코스피가 ‘박스피’을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코스피 상단을 최고 3000선으로 제한하는 이유도 비슷했다. 미국 금리와 물가가 동반 상승하는 국면에서는 한국 등 신흥국 제조업 국가들이 상승세를 타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하단을 제한하는 원인은 조금씩 달랐다. 서 본부장과 정 본부장은 지금 코스피가 실적 대비 무척 저렴한 저평가 상태라는 점을 꼽았다. 서 본부장은 “한국 시장은 2600이면 정말 바닥이라고 본다”며 “글로벌 금융위기를 제외하고 주가수익비율(PER) 10배는 잘 깨지지 않았으며 이 상황에서 정말 예측하지 못한 악재가 터지지 않는 이상 업사이드 가능성이 더 높다”고 했다. 코스피 밴드를 가장 보수적인 2500~2900선으로 제시한 정 본부장 역시 “올해도 기업 실적이 전년 대비 나아질 가능성이 높아 2500 밑으로 빠지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심 본부장은 “글로벌 재고 수준이 낮아 재고 수요 축적이라는 (신흥국 제조업 국가들에 유리한) 경기 모멘텀은 여전하며 리오프닝(경기 재개) 기대감도 높다”며 “2600선이 깨지면 과감하게 주식 비중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코스피가 반등할 시점에 대해서는 미국 금리 인상의 폭이 결정될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서 본부장은 “‘빅스텝(50bp 인상)’을 넘어 ‘자이언트스텝(75bp 인상)’ 얘기까지 나오며 시장 불안이 극도로 커진 상황이지만 오히려 5월 초 FOMC를 통해 정확한 스케줄이 나온 후에는 방향성이 명확해지면서 시장이 안정될 것”이라며 “5월에는 고물가 기조도 한풀 꺾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심 본부장 역시 “5월 FOMC에서 연준이 빅스텝을 밟는다면 이건 반대로 경기에 자신이 있다는 방증”이라며 “시장 유동성도 아직 살아 있는 상황에서 안도 랠리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미국과 한국 증시 중 지금은 한국이 더 투자 매력이 높다는 것도 공통된 의견이었다. 저평가 주식을 ‘싸게’ 산다는 관점에서 한국 주식이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정 본부장은 “장기적으로는 미국 시장을 긍정적으로 보지만 나스닥은 10년 전 대비 5~6배 크게 오른 데 반해 국내 증시는 별로 오른 게 없다”며 “한국 증시 저평가를 낳은 물적 분할, 횡령·배임 등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면 업사이드의 측면에서는 한국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美장보다 한국장”…투자 기회 많아, 유망 업종도 다양=한국 증시를 추천하는 목소리는 같았지만 유망 업종을 바라보는 시각은 제각각이었다. 그만큼 어려운 시장이라는 뜻이겠지만 한편으로는 투자 기회가 여전히 많다는 의미로도 읽혔다.
서 본부장은 리오프닝과 친환경 에너지 관련 회사를 긍정적으로 봤다. 그는 “유럽이 러시아·중국의 석유·석탄·가스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있다”며 “결국 풍력이나 태양광·원전 등 신재생에너지 관련 투자 계획을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친환경과 관련해 우리나라가 가장 잘하는 조선 등의 분야도 눈여겨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예컨대 친환경 선박이 필요하다고 할 경우 그것을 기술적으로 해낼 수 있는 곳은 한국 조선 기업들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심 본부장은 고배당주 투자를 권했다. 그는 “금리 인상으로 유동성이 축소되는 국면에서는 자금 조달이 잘 안 되는 성장 기업이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며 “배당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자금 조달이 용이하고 재무적으로도 자신이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고배당주 중에서는 실손보험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는 보험 업종을 추천했다. 또 안정적인 수익을 바탕으로 신사업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통신 업종과 리오프닝 수혜가 기대되는 음식료 업종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정 본부장은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받지 않고 4차 산업혁명과 관련 깊은 게임 업종을 유망하게 봤다. 정 본부장은 “게임 업종 자체가 글로벌 시장에서 메인 인수합병(M&A) 대상이 될 정도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할 잠재성이 많다”며 “국내 게임사들은 우량 회사인 만큼 합병 등의 호재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장성에 비해 최근 지나치게 주가가 하락했다는 것도 게임 업종의 투자 매력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