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다음 달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들과 잇달아 정상외교를 벌인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매달려온 미국 외교의 무게중심을 인도태평양으로 옮겨 이 지역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하기 위함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를 비롯해 미국이 역내에서 추진하는 대중 견제 전략들이 연이어 닻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여기에 최대한 많은 국가들을 끌어들일 작정이다. 하지만 IPEF 등의 방향성이 여전히 모호하다는 문제 의식이 미국 내에서도 적지 않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초고속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우리 정부 입장에서도 다각적인 대비가 필요해 보인다.
18일 워싱턴 외교가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첫 구상을 밝힌 IPEF 등 핵심적 인도태평양 전략들이 다음 달 정상외교 과정에서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5월 12~13일(현지 시간) 아세안 정상들을 워싱턴DC로 초청해 특별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데 이어 20~21일께 한국을 방문해 새 대통령과 회담할 가능성이 유력하게 점쳐진다. 이어 24일을 전후해 일본에서 쿼드(Quad, 미국·일본·인도·호주의 안보협의체) 정상회담에 참석할 예정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응하느라 동력을 상실한 아시아 외교를 재가동한다는 구상이다.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영유권 분쟁 중인 아세안 국가들을 IPEF 같은 미국의 ‘경제 안보’ 동맹에 동참시키고 무뎌진 한미일 삼각 협력을 복원하며 쿼드를 통해 중국의 군사력 팽창을 견제하는 것이 바이든 정부에서 추진하려는 아시아 외교 노선이다.
이 가운데 IPEF를 실질적 대중 견제 협력체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한국·호주·일본뿐 아니라 인도네시아·베트남·태국 같은 아세안 주요국들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이 백악관의 판단이다. 백악관은 앞서 아세안 특별 정상회의 일정을 발표하면서 “동남아에서 강력하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역할을 하는 것이 바이든 정부의 최우선 과제”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의욕과 달리 IPEF를 비롯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구체성이 떨어지며 중국 주도의 일대일로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비해 유인이 부족하다는 분석이 미국 싱크탱크들에서 제기된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최근 인도태평양 지역의 12개국 이상 정부 관계자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역내 국가들이 미국 외교의 아시아 복귀를 환영하면서도 IPEF 등의 효용성에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IPEF를 통해 공급망을 동맹 중심으로 재편하고 청정에너지·탈탄소·반부패 등에서 새로운 규범을 만들려 하지만 참여 국가들이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혜택은 제한적이리는 것이다.
매슈 굿맨 CSIS 수석연구원은 “바이든 정부는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 강화가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것이 없다면 RCEP이나 일대일로 등의 대안과 비교해 실질적인 혜택이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아울러 미국 정치의 변동성을 파트너 국가들이 우려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바이든 정부의 요구와 역내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이처럼 엇갈리는 가운데 우리 기업들 역시 바이든 정부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최근 미 상무부와 무역대표부(USTR)에 IPEF에 관한 우리 기업들의 입장을 전달했는데 여기에는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이 공급망을 급격히 재편할 경우 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된다는 의견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DC의 한 소식통은 “바이든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공급망 재편 등에 대한 한국의 우선적 동참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한국이 미국의 전략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협상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기업들의 실익도 챙겨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