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보좌진 등 관계자들과 만나면 빠지지 않고 이야기가 나오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박지현 공동 비상대책위원장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메시지에 힘이 있다” “172명 의원들보다 훨씬 났다” “차세대 리더십” “민주당이 망하진 않겠다” 등 공통된 평가는 박 위원장이 “놀랍도록 잘하고 있다”는 겁니다. 공동비대위원장에 이름을 막 올린 한달 전만 해도 “어린 여자가 뭘 하겠나” “이대남(20대 남성)과 갈라치기 덫에 빠지는게 아니냐” “패미니즘에 갇히게 될 듯” 등 우려가 컸던 게 사실입니다. 그랬던 박 위원장이 민주당을 구할 새 리더십으로 평가받는데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우선 위원장에 선임된 직후 박 위원장이 내놓은 발언들을 같이 살펴보실까요.
박 위원장은 잘 알려진대로 이른바 ‘n번방’사건을 처음 공론화한 ‘추적단불꽃’출신입니다. 정치입문은 대선 막바지 이재명 선거대책위원회에 합류하면서 시작했습니다. 그의 합류로 2030여성 지지층 결집을 이뤄냈다는 평가가 커지고 있던 가운데 대선패배후 당의 비대위까지 맡았습니다. 96년생 정치 초년생에게 당 안팎 평가는 냉혹했습니다. 이를 의식해서였을까요. 박 위원장은 초반 당 쇄신과 청년 여성정치인, 갈등 해결, 정치의 책임 등 정치인의 자세와 행동을 강조했습니다. 스스로 각오를 다졌을 것이고, 대선 패배후 어수선한 당에 자신의 메시지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에서는 임기가 제한(8월전당대회)된 비대위원장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정치 경험도 없는데 6·1지방선거를 총지휘할 역량이 있냐는 비판과 함께 ‘청년 들러리’ 등이라는 평가까지 나왔습니다. 실제 지난달 31일 정책의원총회에서 설훈 의원이 “얼굴을 보고 싶으니 마스크를 벗어달라”라고 말한 건 박 위원장에 대한 당내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박 위원장 입장에서도 전체 의원들도 서로 처음 대면하는 자리에서 설 의원은 “얼굴을 잘 몰라요. 마스크 벗은 모습을 좀 보고 싶다. 진짜 몰라요”라고 발언했습니다. 설 의원의 말에 좌중에선 “텔레비전에서 나온 거 하고 달라”와 같은 호응성 발언까지 나왔습니다. 설 의원이 이를테면 이낙연 전 대표에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젊은 여성 정치인이기 전에 ‘애’로 봤기에 가능한 말은 아니었을까요. 이날 박 위원장은 설 의원의 발언에 웃고 말았습니다. 그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변화하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는 절박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설 의원의 발언은 웃고 넘겼지만 이후 박 위원장 발언의 강도가 달라집니다. 당내 주요 세력인 친명·친문계 모두 비판한데 이어 강성지지층이 맹목적으로 밀어붙이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박탈)’에도 할 말을 합니다. 일부 의원들이 ‘묻어가겠다’며 강성 지지층에 문자폭탄을 피할 때 일각에서 ‘애’로 본 박 위원장은 “우리 앞엔 두개의 길이 있다”며 누구도 밝히지 못한 신중론을 공개적으로 내놨습니다.
“검찰개혁 꼭 해야하지만 국민의 시선과 정치적 환경이 매우 어렵다. 우리 앞엔 두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검수완박은 철수하고 민생법안 집중하는 길. 다른 길은 검찰개혁을 강행하는 길. 문제는 강행하더라도 통과시킬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치에서 원칙과 명분이 중요하단 걸 배웠다. 하지만 실리와 과정도 중요하다는 것 역시 깨달았다. 검수완박 법안 통과되기도 힘들지만 통과된다 해도 지선서 지고 신뢰 잃지 않을까 걱정된다… 검찰개혁, 분명 해야 하지만 방법과 시기는 충분히 더 논의해야한다…충정으로 누군가는 말해야 할거같아 먼저 했다. 저는 이게 제 역할이라 생각한다. (4월12일 민주당 정책의총)
강성 지지층의 문자 융단 폭격이 예상되지 않으신가요. 사실 최근의 강성 지지층은 피아의 구분까지도 모호해진 상태입니다. 김오수 검찰총장의 사표를 반려했다며 문재인 대통령까지도 저주에 가까운 비판을 퍼붓고 있는 게 지금 민주당 지도부를 움직이는 강성 지지층입니다. 그런데 박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신중론을 밝힌 겁니다.
초선 의원들이 ‘여자 김종인’‘청년 김종인’이라고 치켜세운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50대 남성의원들, 3선 이상 누릴거 다 누리고 있는 의원들도 용기에 박수를 치고 있습니다. 당론 결정뒤에 발언도 노숙한 정치인의 발언처럼 무게감을 가졌습니다. 그는 정책의총 다음날 “의총에서 채택한 당론 존중한다. 다만 원내에서 검개 보다 신중하게 추진하고 국회에 계류중인 민생 법안과 지방의회 2인선거구 폐지 법안 같이 처리한다는 원칙 세울 것 제안한다”(4월13일 비대위)고 했습니다. 검수완박은 개혁법안대로 당론으로서 존중하면서도 민주당이 민생법안과 정치개혁법안을 놓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내세운 겁니다.
앞서 8일 비대위 회의에서는 “부동산 문제로 국민을 실망하게 한 분들과, 대선 패배에 책임을 지겠다며 물러난 당 대표가 지방 선거 후보로 등록했다”며 “민주당에서 반성과 쇄신은 가능한 것인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이었습니다. 충북 지사에 나선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서울시장을 준비하는 송영길 전 대표를 정조준한 것인데, 박 위원장의 ‘내부 저격’에 실제 가장 아팠을 사람들이 노영민·송영길 두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재명 전 경기지사를 두고 벌어지는 ‘이심(李心)’ 경쟁에도 쓴소리를 냈습니다. “지금 우린 선거를 하는거지 이재명이랑 누가누가 더 친하나 내기하는게 아니다” (4월8일 비대위) 친명과 친문 비명(非明)까지 싸잡아 비판한 건 0선 비대위원장에게는 더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겁니다. 이를 두고 당내 한 인사는 “아무것도 빚지지 않은 여의도 밖 인물이 눈치 보지 않고 민주당에 건강한 호흡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강성지지층에게 문자폭탄을 당할까 할 말 못하고 계파에 눈치보며 이래저리 이해를 맞추는 여의도 정치인들과 다른 행보에 기대감이 묻어나는 얘기였습니다. “민주당 잘못한 것 바꾸고 쇄신하기 위해 여기있다는 점 분명히 말씀린다. 대선 패배 원인 중 하나가 반론 제기할 수 없는 진영 논리, 온정 주의 때문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4월11일 비대위)
문제는 박 위원장의 쓴소리가 먹히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노영민 전 실장은 충북지사에 단수공천됐고, 송영길 전 대표는 서울시장 출마를 강행했습니다. ‘검수완박’에 우려점을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가속을 붙이며 4월 임시국회 처리를 벼르고 있습니다. 당내 입지가 좁은 상황에서 메시지의 무게를 역할이 따라오지 못하는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박 위원장은 성폭행 혐의 등으로 복역 중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 부친상에 민주당 인사들이 조문을 가자 “‘진짜 내가 멱살이라도 잡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화가 났다”고 했지만 그뿐이었습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태에 피해호소인이라 칭했던 의원들의 당내 영향력은 여전합니다.
그 와중에 일각에서는 6·1지선과 함께 치러지는 보궐선거에 박 위원장을 차출해야 한다고까지 합니다. 말그대로 ‘들러리’를 세우겠다는 수준의 사고입니다. 박 위원장이 얄팍하고 눈치나 보는 여의도 정치와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민주당 내부에서 정치력을 발휘하게 될까요. 그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제가 디지털 성범죄 시간을 취재하고 그것을 근절하기 위해 활동한 것은 사회를 바꾸기 위한 운동의 개념이었습니다. 하지만 ‘젠더 이슈밖에 모르는 어린 여자애’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를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한 사람으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여성, 나이, 학벌 등의 프레임으로 저를 바라봐주시는 것 또한 좀 아쉽습니다”라고 했습니다. 3월 21일 비대위에서는 “말은 짧게 행동은 길게 이어 나가겠다”고도 했습니다. 말 만큼 이제 행동이 중요합니다. 박 위원장이 민주당 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의 쇄신을 일으키길 두손 모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