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지업계의 가격 인상은 일반 인쇄용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련 종이 제품과 연관 업계의 연쇄 가격 인상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점에서 산업계 전반이 주목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에는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일반 인쇄용지에 그쳤지만 식품 포장이나 택배 라벨용으로 주로 쓰이는 특수지인 글라신지로 적용되면서 가격 인상 파장이 확대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럴 경우 배달 제품에 쓰이는 포장재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배달비 상승마저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6월에는 고급 인쇄용지의 추가 가격인상도 이어질 전망이다. 한국제지는 러프글로스지(도록 등에 사용되는 캔버스 질감의 고급 인쇄용지)인 '아르떼'(ARTE)를, 한솔제지는 화보집과 사보, 고급 명함 등에 사용하는 프리미엄 인쇄용지 ‘앙상블 E 클래스’의 가격을 인상한다. 다만 기준가 대비 가격 인상 방식이 아닌 할인율 축소 형태로 가격을 올릴 계획이다.
제지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자재 급등 속도가 너무 빨라 경영상 한계에 직면했다”며 “가격 인상분이 실제 반영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해 제지업계의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시차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지 업계가 줄줄이 가격 인상에 나선 것은 가파르게 오른 원자재 가격 영향이 크다.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된 상황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의 장기화는 원자재 수급 상황을 악화시켰다. 수급 불균형이 가속화하자 종이 생산 원가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펄프 가격이 급등세로 돌아서 제지 업체에 직격탄이 됐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3월말 미국 남부산혼합활엽수펄프(SBHK)의 가격은 톤당 785달러다. 675달러였던 올 1월 펄프 가격과 비교하면 19.8%나 뛰었다. 3개월 새 130달러가 폭등한 것이다. 1월에 675달러, 2월에 725달러로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 유가가 고공행진을 거듭하며 해상운임이 치솟은 것도 인쇄용지 가격 인상에 일조했다. 올 1월 중 배럴당 83.5달러를 기록한 두바이유는 2월 92.4달러로 뛰었고 3월엔 110.9달러로 올라 100달러를 돌파했다. 15일 기준 글로벌 해운운임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 운임지수(SCFI)는 4263로 1월(5109) 대비해 하락세지만 지난해 평균 3769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다. SCFI를 집계한 2009년 이래 5000선을 돌파한 것은 역대 처음이다.
원자재 값 급등은 이미 주요 생활용품의 가격으로 이어진 상태다. 인테리어 업계는 연초부터 5% 이상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한샘은 올 들어 2월과 3월 창호, 마루 등 건자재 제품을 비롯해 주방, 욕실 제품을 4% 인상한 데 이어 이달부터 소파, 침대, 책상 등의 가격을 인상했다. 시디즈도 이달 들어 370개의 품목 중 190개 품목의 가격을 5% 인상했다. LX하우시스도 3월 주방, 욕실, 바닥재, 벽지 등을 10% 인상한 데 이어 내달부터는 창호 제품의 가격도 5% 내외로 인상한다.
인테리어 업계 관계자는 “창호와 바닥재 등 주요 제품의 원재료로 사용되는 PVC의 가격이 2021년에 2020년 대비 평균 60% 오른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도 상승세가 계속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PVC 가격뿐만 아니라 MDF, 원목, 원단 등 원부자재 가격이 계속해서 올라 가격 인상 압박이 거세졌다”고 전했다.
화장품 업계도 마찬가지다. 샤넬과 미샤 등은 2월~3월에 각각 4%, 11% 이상 가격을 올렸다. 이니스프리는 이달 2일부터 최고 36% 인상했고, 아모레퍼시픽은 25일부터 평균 10% 가격을 인상한다.
페인트 등 건설 자재 업체들도 치솟는 원자재 가격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판매가 인상에 나섰다. 시멘트업계 1위로 평가되는 쌍용C&E는 15일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와 1종 시멘트 가격을 기존 1톤(t)당 7만 8,800원에서 9만 8,000원으로 올려 공급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15.2%에 이르는 인상폭이며 지난해 7월 가격을 올린 뒤 약 8개월 만에 연이어 인상에 나선 것이다. 페인트 업체들도 가격 인상 대열에 동참했다. 노루페인트, 삼화페인트, 강남제비스코 등 주요 페인트사들은 지난 3월 말 대리점에 가격 인상을 전달했다.
송영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원료인 펄프와 물류비의 가파른 상승은 제지 업계의 경영 비용 급증으로 이어져 결국에는 화장지·생리대·기저귀·물티슈 등의 생필품 물가 인상까지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현호·연승·이완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