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정교회 키릴 총대주교(모스크바 총대교구청)의 전쟁 옹호 발언으로 인해 1000년 역사의 동방정교회가 갈라질 위기에 처했다. 동방정교회는 천주교·개신교와 함께 3대 기독교 분파로 신도 수는 약 3억명에 달한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이탈리아·미국·프랑스 등 정교회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키릴 총대주교에게 크게 반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동방정교회의 가장 큰 교파인 러시아정교회 키릴 총대주교가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신성한(Sacred)’ 전쟁이라고 치켜세운 데 따른 반응이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일부 신자는 교회를 옮겼으며, 프랑스에서는 정교회 신학생들이 주교에게 모스크바 총대주교청과의 결별을 청원했다. 또 이탈리아 우디네 정교회 볼로디미르 멜니추크 대주교는 “모스크바 총대주교가 신학이 아닌 국가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데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키릴) 총대주교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배신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동방정교회의 수장 격인 바르톨로메오 1세 총대주교(콘스탄티노플 정교회)와 키릴 총대주교의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동방정교회가 둘로 쪼개질 조짐도 보인다. 이들은 앞서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병합 이후 갈등이 불거진 바 있다.
바르톨로메오 1세 총대주교는 한 인터뷰에서 키릴 총대주교를 겨냥해 “그는 푸틴 대통령과 그렇게 많은 것을 동일시하지 말았어야 했고, 우크라이나 침공을 ‘신성한 것’이라 부르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교회는 전쟁, 폭력, 테러를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키릴 대주교는) 정교회 전체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키릴 총대주교는 지난 3월 모스크바 대성당에서 열린 예배에서 빅토르 졸로토프 장군에게 금박을 입힌 성화를 주며 축복 기도를 했다. 졸로토프 장군은 “귀중한 선물이 우크라이나 나치와의 전투에서 군대를 보호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또 같은 달 설교에서 “신은 거짓된 서구 자유의 세계가 아닌 러시아의 편”이라고 말하며 서방의 성 소수자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다.
키릴 총대주교는 푸틴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로 알려졌으며 지난 2012년에는 그의 시대를 “신의 선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매주 설교에서 우크라이나를 외부의 적으로 규정하며 신자들이 침공에 참여하도록 독려하기까지 했다. 이에 스톡홀름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시릴 호보룬 교수(교회학)는 WP에 “모든 전쟁에는 총과 아이디어가 있어야 한다”며 “이 전쟁에서는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이 총을 제공했고 교회가 아이디어를 제공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