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회가 코로나19에서 벗어나 일상으로의 복귀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법원이 대중교통 등에서의 마스크 착용 의무화에도 제동을 걸면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이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런 가운데 기업들도 코로나19 확산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벌이면서 직원들에게 사무실 복귀를 종용하고 있는데요, 인플레이션이 이 같은 행보에 제동을 걸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김연하의 글로벌체크'에서는 언뜻 보기에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인플레이션과 사무실 복귀를 다룬 뉴욕타임스(NYT)와 블룸버그통신의 기사를 소개합니다.
■사무실 복귀에 물가 상승까지…커지는 경제적 부담
사실 이제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더 이상 놀랍지 않을 정도인데요, 지난 3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대비 8.5% 오르며 1981년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평균 휘발유 가격은 2019년 약 2.60달러에서 지난달 4.33달러로 급등했고, 샌드위치에서부터 샐러드, 커피 등과 같은 음료의 가격도 모두 올랐습니다. 이 때문에 점심과 인플레이션의 합성어인 ‘런치플레이션’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는데요, 기술 기업인 스퀘어는 3월 기준 랩의 가격은 전년대비 18% 올랐으며, 샌드위치와 샐러드도 각각 14%, 11%나 올랐다고 밝혔습니다. 점심에 쓰는 지출이 늘어난 것이 현실이라는 겁니다. 이를 반영하듯 실제 3월 외식비는 전년 동기대비 6.9%나 올랐으며, 사무실 직원들이 점심으로 즐겨먹는 샐러드의 가격은 사상 최대인 8.7%나 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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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같은 물가 상승이 사무실 복귀와 겹쳐지면서 사람들의 경제적 부담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는 겁니다. 뉴욕시에 소재한 한 로펌의 파트너인 마이클 로즈는 블룸버그에 "매일 출퇴근을 하며 커피와 베이글, 점심 비용, 반려동물 돌보미 비용으로 나가는 지출이 90달러가 넘는다"고 털어놨습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최근 미국에서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는 직장인 5명 중 2명은 고용주들이 자가용을 이용해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보상해야 한다고 응답했으며, 4분의 1은 기름값 때문에 원격근무를 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구인구직 사이트인 몬스터의 지아코모 산탄젤로 이코노미스트는 "기업들이 직원들을 다시 직장으로 복귀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교통비가 너무 빠르게 올라 사람들이 이를 감당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사무실 복귀 위해 ‘임금 인상’ 등 당근 제시하는 기업들
볼티모어에서 워싱턴으로 주 3회 출퇴근하는 디자이너 에디스 제이콥슨씨는 사무실 출근을 하면서 경제적 부담이 크게 늘었습니다. 과거에는 차량에 기름을 가득 채우는 데 45달러면 충분했지만 현재는 70달러를 지불하고 있기 때문이죠. 과거 10달러면 충분했던 점심값도 이제는 15달러로 늘었는데요. 결국 이 같은 부담을 견디지 못한 제이콥슨씨는 사측에 임금 인상을 요청했고 마침내 4000달러의 임금 인상을 끌어냈습니다.
대퇴사(great resignation) 현상이 계속되면서 여전히 인력난에 시달리는 상태에서, 임금 인상이라는 당근을 제시해서라도 직원들을 붙잡겠다는 의지로 읽힙니다. 이 밖에 임금 외에 교통비 등을 보상하는 기업들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댈러스 소재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오더마이기어는 최근 예산에서 직원들에 대한 보상 부문을 지난해보다 3배 늘려 할당했습니다. 대중교통 무료 이용권과 무료 주차, 주 2~3회 식사 등을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인력컨설팅 업체인 맨파워그룹 북미지사의 베키 프란키에비치 사장은 맨파워그룹이 배치한 직원들 중 일부는 기름값을 줄이기 위해 더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곳에서 일하려 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기름값 카드나 교통권, 승차공유 옵션 등을 제공하는 회사들도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맨파워그룹은 직원들로부터 물가 상승이 근무지를 정하는데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배 이상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프란키에비치 사장은 "이는 퍼펙트스톰"이라며 "원격근무는 안전조치로 시작됐지만 이제는 비용 억제 조치가 됐다"며 "과거에는 '출퇴근을 하기 싫다'였다면 지금은 '출퇴근을 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조치로 재택근무가 시행됐던 거라면, 이제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응조치로 시행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입니다.
■비용 부담에 사무실 복귀 철회하는 기업도
인플레이션의 여파 때문일까요. 계산기를 두드린 뒤 사무실 복귀를 철회하는 기업들도 있습니다. 직원들에게 재택근무를 끝내고 사무실로 복귀할 것을 요구했던 보안 소프트기업인 노우비4(KnowBe4)는 지난 1월 결국 이를 철회, 1500여명의 직원들에게 재택근무를 계속 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회사가 사무실 복귀를 철회한 것은 비용 증가에 따른 우려 때문입니다. 노우비4는 물가 상승률이 유독 높은 플로리다 클리어워터에 본사를 두고 있는데요. 사측이 사무실 복귀를 요청하자 직원들이 강아지 돌보미에서부터 아이 돌보미 등과 같은 사무실 복귀에 드는 비용을 요청하면서 복귀 시점이 밀렸고, 끝내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선호한다고 밝히면서 회사는 아예 사무실 복귀 계획을 접었습니다. 이 회사의 인사 담당자인 에리카 랜스는 "만약 고용주들이 직원들에게 '사무실에 와야 하고 이 돈을 기름값과 점심값으로 써야 한다'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그 비용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인플레이션에 최근에는 ‘RTO(사무실 복귀·return to office) 쇼크’라는 말도 외신 헤드라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는데요, 우리보다 앞서 코로나 방역조치 해제에 나선 미국이 재택근무 종료와 사무실 복귀에 있어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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