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시장 민주화” 美 기업 3조 시총…기득권 벽에 韓 리걸테크 ‘끙끙’

고려대 기술법정책센터 등 리걸테크 세미나 개최
글로벌 리걸테크社 1,900곳 육박해 급증세
“삼성도 애플과 소송에서 리걸테크 도움 받아”
韓 규제·변협 ‘몽니’에 시장 성장 정체 우려

지난해 6월 리걸줌의 나스닥 상장 행사 모습 / 사진=나스닥

“우리의 임무는 법률 시장을 민주화하는 것이다.” 미국의 ‘리걸테크’(법+기술) 기업 리걸줌(LegalZoom)의 최고경영자(CEO) 댄 웨르니코프가 경제전문채널 CNBC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미국 법률 시장의 민주화’를 목표로 내건 리걸줌은 법률 문서 자동 작성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회사다. 지난해 이를 통해 올린 총 매출은 5억 7,500만 달러에 이르며 현재 시장에선 약 30억 달러 가치로 평가받는다. 작년 6월 나스닥에 상장 직후 주가가 치솟을 땐 시가총액이 75억 달러를 찍기도 했다.


리걸테크 산업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커지고 있다. 법률 서비스 공급자인 변호사뿐만 아니라 수요자인 소비자에게서도 효용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갖가지 규제와 관계자 간 갈등까지 불거져 성장세가 유독 더디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혜련(오른쪽) 경찰대 교수가 21일 서울 강남구에서 열린 ‘리걸테크와 소비자법 이슈와 과제’ 세미나에서 리걸테크 산업 및 시장 동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사진제공=로앤컴퍼니


정혜련 경찰대 교수가 21일 ‘리걸테크와 소비자법 이슈와 과제’ 세미나에서 발표한 ‘리걸테크와 소비자 후생, 리걸테크 유니콘의 성장배경과 사례를 중심으로’ 논문에 따르면 전 세계 리걸테크 기업은 이달 10일 기준 1,887개로 집계된다. 지난 2016년 1,100여 개 수준에서 급증했다. 정 교수는 “리걸테크 기업은 주로 미국, 영국, 독일에 분포돼 있다”면서 “초기 기업들은 판례 수집, 문서 분석 등 빅데이터 처리 기술 개발에 집중됐지만 최근에는 자동화된 서류 작성, 법률자문 시스템 등 개발 분야로 점차 확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미국의 리걸테크 성장은 압도적인 기술력이 이끌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리콘밸리를 기반으로 발달한 뛰어난 기술을 법률 데이터에 적용하면서 수많은 신생 기업의 탄생을 도왔다는 것이다.


업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높은 효율성 또한 성장세의 주요 포인트로 꼽았다. 법조인과 일반 소비자 모두가 리걸테크를 통한 편리함을 경험하면서 산업의 발전을 뒷받침했다는 해석이다. 정 교수는 “미국의 리걸줌은 법조인과 고객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이라며 “과거 6,000달러 정도가 소요되던 법률 서비스 비용을 약 300달러 정도로 제공해 고객의 큰 부담을 덜어줬다”고 했다.


특히 법률 시장의 비용을 낮추고 접근성을 높인 탓에 서민 등 일반 소비자들이 큰 혜택을 봤다고 전했다. 정 교수는 “비용 절감은 개인과 중소기업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회사 설립에 필요한 자문 등으로 미국의 많은 스타트업들이 LLC(유한회사) 형태로 법적 절차를 마칠 수 있었고 개인의 경우 복잡한 세금 관련 문서 작성 등 어려움에서 해방 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전가증거개시제도’(e디스커버리)와 같은 미국의 독특한 사법 환경도 신생 기업을 등장시켰다고 봤다. 소송 절차가 시작된 후 피고와 원고 모두 관련 증거를 남김없이 공개하는 제도(디스커버리)가 있던 가운데 그 범위가 전자문서까지 확대되자 이를 분석할 기술과 서비스 도입의 필요성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삼성 역시 과거 미국에서 애플과의 특허 소송에서 일본의 한 리걸테크 업체의 도움을 받아 진행한 바 있다.


정 교수는 관련 대표 기업으로 로지컬(Logikcull)을 제시했다. 로지컬은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전자증거 개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 막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하고 정렬해 제공한다. 정 교수는 “로지컬의 한달 사용료는 395달러(약 48만 원)로 로켓로이어, 리걸줌 등 검색이나 문서작성 업체보다 비용이 높다”면서도 “그러나 미국 법원이 소송과정에서 증거개시 절차의 적법성에 따라 수천억대 과징금을 부과받을 수 있고 소송상대방에 대한 손해배상의 판결이 나온 경우도 있어 리걸테크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안기순 로앤컴퍼니 이사가 21일 서울 강남구에서 열린 ‘리걸테크와 소비자법 이슈와 과제’ 세미나에서 참석해 로톡과 관련한 사항에 대해 말하고 있다. / 사진제공=로앤컴퍼니


반면 한국의 사정은 크게 다른 양상이다. 국내에서도 리걸테크를 표방한 기업들이 있지만 겹겹이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해석이 관련 업계로부터 나온다. 가령 한국은 미국·영국·독일과 달리 판결 정보공개가 제한적이다. 이에 인공지능과 같은 새 기술을 적용하더라도 편향성 등의 문제가 불거질 여지가 클 수밖에 없다. 이른바 ‘로톡 사태’로 불리는 변호사 단체와 갈등 역시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로톡의 운영사 로앤컴퍼니의 대표는 한국벤처창업학회 춘계학술대회에 참석해 “한국 리걸테크는 기득권에 가로 막혀 글로벌 기준에 현저히 못 미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법률 데이터 공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등 개선된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로앤컴퍼니의 안기순 이사도 “적극적인 규제 개혁을 통해서 리걸테크 발전을 선도하는 강국이 될 수 있는데 현실은 합법적 서비스마저 불가능하게 만드는 상황”이라면서 “앞으로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문제들을 풀어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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