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이사회가 금리 상승에 따른 회사채 발행 부담 우려를 매 이사회 때마다 제기하는 등 한전의 재무상황이 악화일로다. 한전은 올들어 월평균 3조원이 넘는 회사채를 발행한데 이어 이달에는 발전공기업으로부터 외상으로 전력을 사들일 수 있도록 ‘전력거래대금 결제일에 관한 규칙’을 개정하는 등 자금조달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부가 올 2분기 실적연료비를 에너지가격 급등 속에서도 동결한데다, 연간 단위로 결정하는 기준연료비 오는 10월부터 인상분 전액을 반영토록 해 한전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지 미지수다.
22일 한국전력이 올 2월 개최한 이사회 회의록에 따르면 참석 이사들은 “지정학적 변수에 따른 연료가격 상승과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따른금리 변동 등에 대한 대응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전 이사회가 개최된 날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한 당일로, 글로벌 자금조달 리스크가 본격화 되기 전이다. 한전 이사회측은 지난해 12월 중순 열린 회의에서도 “글로벌 경제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으며 이에 대비해 자금 조달 및 운영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한전 이사회가 이 같이 금리 변동 및 자금조달에 대해 우려하는 배경에는 전기요금 동결과 최근 몇년새 급증한 사채 규모 등 복합적이다. 상환액을 제외한 한전의 지난해 누적발행 사채는 전력채(34조800억원)와 회사채(28조1944억원)를 합친 원화사채만 62조2744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외환사채 11조7642억원을 더할 경우 지난해 누적발행만 총 74조 386억원 수준이다. 2020년 총 사채 규모가 64조7534억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1년새 사채 규모만 10조원 가량 늘어난 셈이다.
환율 변동에 따른 한전의 재무제표상 금융손실도 대폭 늘었다. 한전의 지난해 ‘원화환산손실’은 1조1593억원으로 2020년의 2150억원 대비 무려 5배 가량 증가했다. 지난해 연평균 원달러 환율은 1150원대였던 반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최근 환율이 1240원대까지 치솟은 만큼 올해 관련 손실 규모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한전의 지난해 이자비용은 1조9144억원으로 전년의 1조9954억원 대비 오히려 줄었다.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각국의 재정확장 정책으로 시중 유동성이 늘어나며 금리 부담이 줄어든 탓이다. 빚을 내도 큰 무리가 없었던 셈이다.
문제는 올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8월과 11월에 이어 올 1월과 4월에도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최근 8개월새 기준금리가 1.00%p인상됐다. 영국은 지난해 12월과 올 2월 각각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으며, 지난달에는 미국이 기준금리를 0.25%p 인상한데 이어 0.5%p 추가 인상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각국의 글로벌 금리 인상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한전의 이자상환 부담도 급증할 전망이다. 실제 한전의 10년만기 회사채 금리는 2020년 한때 1.48%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이보다 2배이상 높은 3% 중반대를 기록중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한전은 회사채 발행을 늘리고 있다. 한전은 올들어 이달 중순까지 11조94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한전의 대규모 회사채 발행에 따른 물량 폭탄으로 여타 기업들의 회사채 금리까지 덩달아 오르는 등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액화천연가스(LNG)·석탄·석유의 ‘트리플 가격’ 인상에 따른 연료비 부담으로 회사채 발행을 이후에도 늘려야 한다. 한전은 올 2분기에 1kWh당 33.8원의 요금 인상 요인이 발생했지만, 정부가 물가상승 우려를 이유로 요금 인상을 억누른 만큼 전력을 판매할 수록 손실이 늘어나는 구조다. 3분기 연료비도 대폭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20일까지 원유 수입액은 전년 동기 대비 82.6% 상승한 68억75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가스 수입액은 88.7% 늘어 19억1000만 달러를 기록했으며 석탄 수입액은 무려 150.1% 늘어 14억900만 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들 원료의 수입가격 상승은 한전의 재무부담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한전공대 설립 관련 비용 1조6000억원 중 절반 가량을 향후 10년간 한전이 부담해야 한다.
한전 이사회 측은 적절한 요금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전 측은 지난해 연말 개최된 이사회에서 “전기요금에 총괄원가가 적기에 반영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노력을 해야 한다”며 “전기요금 조정에 대한 대국민 이해와 수용성 확대를 위하여 소통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측이 물가상승 부담을 이유로 이후에도 실적연료비 동결을 골자로 한 ‘전기료 동결’ 카드를 꺼낼 가능성 높다.
한전은 이미 올 1분기에 지난해 기록한 연간 영업손실(5조8601억원) 규모를 뛰어넘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3월과 올 3월 전력거래량과 전기요금은 큰 차이가 없지만, 같은기간 전력거래액은 3조8410억원에서 7조47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한전이 지난달 기록한 영업손실액은 1년새 전력거래액의 차액과 비슷한 규모가 될 전망이다. 증권사 컨센서스에 따르면 한전의 올해 영업손실 규모는 17조원 이상이 될 전망이며 메리츠증권은 최근 연료비 인상분 등을 반영해 손실 규모를 무려 22조 8144억원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양철민의 경알못’은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10년 넘게 경제 기사를 썼지만, 여전히 ‘경제를 잘 알지 못해’ 매일매일 공부 중인 기자가 쓰는 경제 관련 콘텐츠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