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등 급진적 환경 정책 무리수…‘탄소 중립’ 속도 조절 나서야” [청론직설]

◆허탁 한국환경한림원 회장(건국대 교수)
무리한 정책 만들어 기업을 윽박지르는 행태 벗어나야
한국은 신재생 여력 풍부하지 않아 정책궤도 수정 필요
업계 R&D·시설 투자에 세액공제 등 과감한 지원 절실
CCUS 기술개발 등으로 환경산업 미래먹거리로 키워야

허탁 한국환경한림원 회장이 25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현 정부는 탈원전 등 급진적 환경 정책을 밀어붙였다”며 “차기 정부는 탄소 중립 추진 과정에서 속도 조절에 나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환경 규제가 기업의 생존을 좌우하는 핵심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탄소 배출량을 낮추지 못한 기업은 관세 폭탄을 맞거나 수출길마저 막히는 상황이 될 수 있다. 과도한 환경 규제가 기업에 부담을 안겨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도 현실이다. 최근 한국환경한림원 회장을 맡은 허탁 건국대 화학공학부 교수는 25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등 현실과 동떨어진 급진적 환경 정책을 밀어붙여 부작용을 낳았다”면서 “차기 정부는 탄소 중립 추진 과정에서 속도를 조절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 교수는 “에너지 전환은 꾸준히 지속해야 할 장기 과제”라면서 “환경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키우기 위한 정부 차원의 파격적 지원과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환경한림원은 환경 보전과 지속 가능한 국가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2011년 사단법인 형태로 출범했다.





-환경 문제가 우리 경제의 최대 현안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이나 탄소 중립은 피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체제인 파리협정 이후 탄소 중립은 새로운 국제 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당장 전자나 자동차·석유화학 산업 등에서는 국제 환경 규제가 발등의 불이다. 이제는 환경 문제에 선제 대응하지 않으면 사회적 불안이 증폭될 수 있다. 환경 문제 대응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이지만 구체적인 방향과 전략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 치밀하게 분석해봐야 한다.


-기업들은 현 정부의 환경 정책에 보조를 맞추기 어렵다고 호소해왔는데.


△업종별로 다르기는 하나 기업과 정부 간 인식 차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환경보호가 필요하다고 해서 전기 공급이 끊기는 상황은 아무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환경보호와 발전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한다는 원칙이 중요하다. 정부가 정책을 만들어놓고 기업들에 무조건 따라오라고 윽박지르는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같이 고민하고 토론하면서 최적의 해결책을 찾아가는 대원칙을 지켜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환경 정책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면.


△일단 환경 문제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급진적 부분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많은 전문가들이 강조했듯이 탈원전 정책은 좀 더 고민하고 신중하게 추진했어야 마땅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우리가 탄소를 줄여나가는 과정에서 과연 완전한 탈원전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탄소 중립 문제를 놓고 신구 정부가 갈등을 빚고 있는데.


△우리는 한마디로 신재생에너지 여력이 풍부한 나라가 아니다. 태양광의 경우 연중 햇빛이 내리쬐는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못하고 풍력에서도 채산성을 갖춘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 신재생에너지 보급은 방향이 맞더라도 어떤 속도로 가야 할지 좀 더 고민해야 한다. 태양광 자급제부터 연료전지,수소, 분산형 에너지 보급 등의 문제까지 해결해야 한다. 새 정부도 탄소 중립 속도를 놓고 고민이 클 것이다.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해 실효성 있는 에너지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친환경적이라는 신재생에너지도 환경 파괴의 문제점을 가진 것 아닌가.





△태양광발전이 많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당장 태양광 셀의 안정성이나 태양광 모듈의 사용 후 폐기물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바람이 똑같은 속도로 일관성 있게 불지 않는다. 이런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에너지 정책을 마련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기업들은 탄소국경조정제도(탄소세)를 발등의 불로 인식하는데.


△유럽은 2026년부터 유럽연합(EU) 역내로 수입되는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전기 등 5개 분야 제품에 탄소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탄소 배출량에 따라 수출 제품에 일종의 ‘관세’를 물리는 제도는 사상 처음이다. 유럽 입장에서는 그동안 자국 제조 업체들만 부담해온 환경 비용이 부당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챙기겠다는 의도다. 중국도 머지않아 유럽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 환경 규제가 새로운 무역 장벽이나 수출 보호막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글로벌 밸류체인 변화도 불가피해진다.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결국 핵심은 기술 혁신이다. 관건은 효율적인 저탄소 에너지 기술을 개발해 이를 상쇄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현재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서 고효율 저탄소 사회 구축을 위한 스마트에너지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제철용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하는 공법인 수소환원제철이나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그린모빌리티 등이 주요 기술 대상이다. 하지만 우리 기술력은 선진국에 비해 한참 뒤처져 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업계의 연구개발(R&D)이나 시설 투자 등에 대한 세액 공제 등 전폭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일부에서는 기업에 불고 있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일시적 유행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다소 과열된 측면이 있지만 단순히 유행으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방법론에서 속도가 빠르거나 늦다고 말할 수 있다. ESG 경영은 이미 기업의 주요 경영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봐야 한다. 이는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면서 인류 생활을 풍요롭게 만드는 사회적 책임 경영이다. 이제는 기업이 돈만 버는 것이 아니라 비재무적 성과에도 관심을 가져야 살아남을 수 있다. ESG를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기업은 주주뿐 아니라 종업원과 고객 등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책임 의식을 갖고 경영해야 한다.


-기업들도 환경 전담 조직을 강화하는 추세인데.


△지금은 환경이 곧바로 돈과 연결되는 시대다. 탄소세는 단적인 사례일 뿐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 여부에 은행 대출 금리가 달라지고 신용 등급도 바뀌는 세상이다. 기업들로서는 과거와 다르게 환경 문제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기업들도 이제는 환경 경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전문 조직을 꾸려야 한다.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부터 탄소와 관련된 회계 처리, 마케팅을 총괄하는 개념의 상위 조직이 필요하다. 기업들이 앞다퉈 신설하는 ‘ESG위원회’는 사회적 책임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으로 볼 수 있다.


-기업들은 환경 규제가 많다고 호소하는데.


△환경 문제는 당장 기업의 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탄소를 급격히 줄여나가는 과정에서 갈등을 빚기도 한다. 정부는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듣고 이를 토대로 환경 정책을 펴야 한다. 지나치게 의욕을 앞세워 환경 규제를 한다면 아예 망가지는 기업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기업들은 당장 어렵더라도 나중에 더 큰 비용을 치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정책 당국과 기업들의 활발한 소통을 통해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공론식 정책이 남발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탄소 중립과 관련해 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CCUS)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정부 정책은 나오는 탄소를 최대한 절약하되 CCUS를 통해 다른 화합 물질을 만들거나 저장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한국화학연구원 등에서 관련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다. 더 큰 문제는 배출된 이산화탄소(CO2)로 다른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점이다. 외견상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역효과를 내는 셈이다.


-환경 산업을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로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환경 산업은 다른 분야에 비해 영세하고 경쟁력도 떨어진다. 우리가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핵심 기술을 갖춘 기업을 집중적으로 키워야 한다. 과거부터 수(水)처리 분야에는 전문 인력이 많은 편이지만 새로운 환경 이슈에 대응할 만한 인력은 부족하다. 정부에서 일부 특성화대학원을 지정해 고급 인력을 배출하지만 수요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CCUS 산업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후 대응 신산업으로 육성하는 것이야말로 기후변화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도 심각한 수준인데.


△유럽에서는 이미 플라스틱 총량 규제를 도입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자면 바이오플라스틱 등으로 대체해야 한다. 미세플라스틱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바로 순환 경제다. 순환 경제란 폐기물을 발생시키지 않고 자원 가치를 보존하는 것이다. 설계 과정부터 재활용이 잘 이뤄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재활용 업체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정보 공개도 시급한 과제다.


-새 정부의 환경 정책과 관련해 바라는 것은.


△새 정부가 출범한 뒤 6월쯤 환경 정책의 틀이 잡히면 새로운 수장을 모시고 정책 토론회를 열 예정이다. ‘지구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미리 빌려 쓰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새 정부는 백년대계 차원에서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면서 실효성 있는 환경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올해 환경한림원의 주요 계획은.


△무엇보다 대중과의 접점을 확대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일반에 공개되는 환경 정책 심포지엄을 자주 개최하고 유튜브 등을 통해 이를 널리 알릴 예정이다. 올해는 현장의 목소리를 자주 듣고 정책에 반영하는 한편 전문 인력을 적극 양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환경 정책 수립과 집행에 대한 조언과 제안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He is…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고와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리하이대에서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리하이대 연구원을 거쳐 1990년부터 건국대 화학공학부 교수로 재직해왔다. 건국대 연구처장·산학협력단장·교학부총장과 한국환경산업기술원(KEITI) 이사 등을 지냈다. 현재 한국환경한림원 회장과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이사, 한국모금가협회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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