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인공지능(AI) 반도체 계열사 사피온(SAPEON)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의 문을 본격적으로 두드린다. 내년 상반기 신제품 출시를 시작으로 글로벌 AI 반도체 강자인 엔비디아에 도전장을 내민다는 계획이다.
류수정(사진) 사피온 대표는 20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에 있는 사피온 본사에서 간담회를 열고 “내년 상반기 ‘사피온 X330’이 나오면 엔비디아와 의미 있는 경쟁이 가능할 것”이라며 이 같이 밝혔다.
사피온은 ‘SK ICT 연합’인 SK텔레콤과 SK하이닉스, SK스퀘어가 공동 투자한 첫 회사다. 비메모리 반도체 영역에서도 또 다른 SK하이닉스가 나와야 한다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의지가 한몫 했다. 사피온은 올 초 본사(미국)와 한국 법인 설립을 마치고 이달 초 운영을 시작한 신생회사지만 이미 성장성 만큼은 인정을 받고 있다. 실제 2020년 11월 출시한 사피온 X220은 당시 나온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T4 모델과 비교해도 딥러닝 연산 속도는 1.5배 빠르고 전력 소모는 20% 낮다. 내년 출시될 X330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류 대표는 “이 분야에서 엔비디아가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삼바노바 시스템즈나 그록 등 스타트업이 엔비디아와 경쟁을 하는 상황”이라며 “엔비디아 칩을 대체하기 위한 경쟁력을 효율성에서 찾고 있다”고 말했다.
사피온이 내세우는 경쟁력은 적은 비용으로도 사용자를 위한 다양한 AI 서비스 제공할 수 있는 전용 칩이라는 점에 있다.
반면 엔비디아의 GPU는 데이터센터의 대규모 학습 및 연산 처리에는 폭넓게 활용됐지만 사용자 서비스를 위한 저지연 AI 추론 서비스에는 효율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이 같은 사각지대를 적극 공략한다는 게 사피온의 계획이다. 류 대표는 "자율주행에 쓰이는 반도체의 경우 학습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가 돌발 상황이 벌어질 때 답을 내는 추론이 중요하다"며 "사피온 칩은 추론에 최적화돼 있어서 문제를 풀 때 효율성이 높은 만큼 이 부분에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만큼 현지 핵심 인력 유치에도 적극 나선다는 계획이다. 미국 법인을 본사로 세운 것도 글로벌 시장 진출 만큼이나 핵심 인재 확보가 중요했다는게 류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시스템 소프트웨어, 아키텍처 등에서 핵심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글로벌로 눈을 돌렸다”며 “국내에 인재풀이 희박한 분야는 글로벌 차원에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강조했다.
류 대표는 2004년부터 2018년까지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에서 모바일 GPU를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지난해 4월 SK텔레콤 AI 액셀러레이터 담당으로 합류하면서 사피온의 밑그림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