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글로벌 시장에 ‘조달 유목민’ 나오려면

김정우 조달청장


스마트폰과 태블릿PC 같은 첨단 디지털 기기를 휴대하는 현대인은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생활한다. 이에 현대인을 ‘디지털 유목민’이라 칭하기도 한다. 그런데 본래 유목민이란 중앙아시아와 몽골 등 건조·사막 지대에서 목축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물과 풀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곳을 개척하며 살아간다. 기존의 터전에 머물면 물과 풀이 부족해져 삶이 불안정해지고 새로운 생존지를 찾으면 생계를 유지하는 것을 반복한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시장과 고객을 한정해 경쟁하면 지속적인 성과를 내기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 기업들은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서도 해외 시장을 개척하며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 우리나라 무역 규모 1조 2000억 달러를 기록하며 세계 8위의 무역 강국으로 부상한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해외 수출 여건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첨단 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한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 석유·천연가스 등 핵심 자원에 대한 전략화와 공급망 재편 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해외에서도 새로운 생존지를 개척해야하는 이유다.


해외 조달 시장은 2020년 기준 약 12조 8000억 달러에 달하는 기회의 땅이다. 조달청은 해외 조달 시장을 포화 상태에 다다른 우리 경제가 한국 기업의 점유율 확대 등을 통해 개척해야 할 블루오션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해외 조달 시장은 자국 기업 우대, 복잡한 법규·절차 등으로 기업 혼자만의 힘으로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뚫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조달청은 우리 강소기업들이 세계 무대에서 ‘조달 유목민’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우선 품질·기술력이 뛰어난 기업을 수출 유망 기업으로 선정하고 기업의 상황과 수출 역량을 꼼꼼히 분석한다. 정밀한 분석을 토대로 진출 가능성이 높은 해외 국가와 전략을 정하고 기업을 지원한다. 해외 입찰에 기업이 바로 참가할 수 있도록 입찰 참가를 위한 인증, 제안서 작성 등을 지원하고 수출 상담회, 전시회 등을 통해 해외 바이어와 기업을 연결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기업의 우수성을 보증하고 적극 지원한 결과가 수출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2013년 69개 사 1억 3000 달러 규모였던 조달 분야 수출은 지난해 1021개 사 12억 5000만 달러로 늘었다. 성과를 지속해서 늘리기 위해 올해는 수출 지원 방식 이외에도 공적 개발 원조나 해외 인프라를 활용한 제품 실증 등 다양한 방식을 도입해 문을 두드리고 있다.


유목민이었던 돌궐족 명장 톤유쿠크는 자신의 비석에 ‘성을 쌓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라고 새겼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우리 기업들이 조달 유목민으로서 해외 조달 시장에서 성장의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활로를 열어주는 것이 조달청의 역할이자 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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