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앵커' 압박감 이겨낸 천우희가 얻은 것

영화 '앵커' 천우희 인터뷰
앵커 역 도전 위해 이미지 변신
압박감 속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에 만족

'앵커' 천우희 /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배우 천우희에게 영화 '앵커'는 도전이었다. 전문직인 앵커의 모습을 그대로 만들어야 했고, 스펙트럼이 넓은 감정선을 소화해야 했다. 또 영화의 장르적 특성을 살리기 위해 전에는 시도하지 않았던 극적인 연기까지 준비했다. "죽어라 연습하는 길밖에 없었다"는 천우희는 압박감을 이겨내고 마침내 새로운 길을 열었다.


'앵커'(감독 정지연)는 방송국 간판 앵커 세라(천우희)에게 누군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며 직접 취재해 달라는 제보 전화가 걸려온 후, 그에게 벌어지는 기묘한 일을 그린다. 9시 뉴스를 진행하는 세라는 기자로 전직해 앵커 커리어를 쌓을 정도로 일에 열정적이다. 그런 세라에게 필요한 건, 세간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취재. 장난전화로 치부하기에 찜찜한 전화를 받고 달려간 곳에서 세라는 시신을 발견하고, 이후로 계속해서 시신의 환영을 보게 된다.


"한국 영화의 힘들고 어렵고 센 캐릭터는 다 나한테 들어오는구나"라고 말했던 천우희. '앵커'를 통해 오랜만에 센 캐릭터로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 그는 센 캐릭터를 만나면, 스스로에게 압박을 부여해 힘든 역경 속에 있는 것 같지만 해냈을 때의 쾌감이 있다고 밝혔다. 꼭 센 캐릭터라고 해서 섬세하거나, 즐겁고 유쾌한 캐릭터라고 해서 쉬운 건 아니라고. 특히 이번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 캐릭터가 서사를 끌고 가 더욱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 단면적으로 사회 초년생이나 청춘을 연기하던 천우희는 연차가 쌓이고 있는 상황에서 전문직 여성을 연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앵커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기초 과정부터 배웠어요. 주로 자세나 발성이었죠. 아나운서가 표현하기론 '다리미로 편 듯한 표정과 중립적이고 신뢰적인 이미지'였어요. 결국은 연습이 답이더라고요. 어떤 직업군을 표현한다는 건 참 신경이 쓰이는 일이에요. '내가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까?' 걱정되고, 그 직업에 있는 분들이 '저게 아닌데'라고 아쉬워하지 않을까 싶으니까요. 전에는 뉴스를 내용 전달로만 들었다면, 이제는 앵커의 모습을 관찰하게 됐어요. 내가 얻을 수 있는 부분은 얻고, 조심해야 될 부분은 배웠죠."


"성숙해 보이고 싶어서 단발로 잘랐어요. 단발머리로 작품을 한 건 처음이라 저도 신선하더라고요. 처음 머리를 자르니 주변에서 '어려 보인다'고 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앵커와 더 비슷한 결을 표현하기 위해 의상이나 메이크업도 신경 썼어요. 전작에선 주로 화장기 없는 얼굴이었다면, 이번에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웃음)



영화 '앵커' 스틸 /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앵커로서 외적인 모습을 만들었다면, 심리적 혼란과 공포심이 점차 고조되고 변화하는 세라의 내면을 만들기 위해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장르적인 영화의 특성과 극적인 심리 중 한 쪽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명확하게 표현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감정적인 그래프를 잘 연결하는 게 가장 중요했어요. 이 인물이 이럴 수밖에 없는 상황과 감정을 최대한 납득시키려고 했죠. 세라의 감정이나 욕망이 점점 더 크게 보일수록 그에 대한 연민이 더 잘 느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당위성이 생길 거라고요. 제가 생각한 감정의 진폭보다 조금 더 크게 연기해야 했죠. 제가 예전에 했던 섬세하거나 밀도 높은 연기보다 작위적이게 보일 수 있을 만큼 뚜렷하게 표현했어요. 매 장면마다 그렇게 연기하니까 에너지 소모가 크더라고요."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마지막 장면이 연기적으로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모든 걸 내려놓고 세라가 새로 탄생한 것 같은 대사와 표정을 지어야 되는데, 움직임 없이 눈동자로만 표현해야 되더라고요. 감을 잡기 쉽지 않았죠. 그전에는 캐릭터에 녹아들어서 표현했다면, 그 장면만큼은 천우희로 찍었는데 처음 경험한 일입니다."


천우희는 극한의 감정을 연기할수록 자기 감상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안의 감정을 통해 연기를 하지만, 항상 객관화하려고 애써야 작품의 의도나 연출에 맞는 캐릭터가 나올 수 있다고. 그는 "'연지만 뇌는 진짜라고 인식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연기자 모드와 일상 모드의 온앤오프를 확실하려고 한다"며 "마인드 컨트롤이 잘 돼야 건강한 연기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품은 모성애에 대해서도 다룬다. 엄마와 딸을 애정과 증오가 공존하는 관계로 해석하고, 나아가 여성의 사회 진출과 육아에 대해서도 논한다. 천우희는 일반적이지 않아 보이는 모녀 관계지만 사실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말하며 깊이 공감했다.


"엄마와 딸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애증이 있어요. 정말 사랑하는데, 어떨 때는 힘든 존재예요. 그만큼 사랑해서라고 생각해요. 세라도 어렸을 때 엄마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는데, 그게 욕망의 결핍으로 이어지잖아요. 엄마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애정 욕구가 사회적인 욕망까지 침범하게 되는 거예요."


"실제 저희 어머니와 상황적으로 닮아 있지 않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은 같아요. 어머니는 제가 자유롭게 클 수 있도록 많이 도와줬어요. 하지만 저 스스로 어머니가 나한테 얼마나 희생했는지, 얼마나 큰 사랑을 줬는지 알기 때문에 제가 느끼는 감정은 세라와 비슷해요. 엄마에게 받은 사랑을 충족시키고 싶은 마음입니다."(웃음)


천우희는 세라와 비슷한 나이대의 배우 입장으로서 결혼과 임신, 출산이 사회 활동에 주는 영향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그는 "어떤 게 우선순위인가, 무엇이 더 중요하냐 생각한다기 보다 제 주변의 친구들이나 선후배 동료들을 보면서 나를 많이 대입한다. 지금 이 순간에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가 먼저"라며 "아직 답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어떠한 결정도 내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세라는 방송국 후배를 경계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고 한다. 이는 비단 아나운서 세계뿐 아니라, 배역을 두고 경쟁하는 배우의 세계에서도 적용되는 상황이다. 천우희는 경쟁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작품의 인연을 믿는 편이었다.


"배우도 선택받는 직업이다 보니까 외부에서 봤을 때는 항상 경쟁 속에 사는 것처럼 보일 거예요. 저는 오히려 그런 경쟁이 외부 평가가 만들어낸 게 아닌가 싶어요. 배우 입장에선 그걸 의식하느냐가 중요해요. 저는 경쟁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작품마다 인연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작품을 따기 위해 치열하게 동료 배우들을 의식하면서 경쟁하듯이 연기하는 건 제 가치관과 맞지 않아요."


"전 작품을 할 때마다 전보다 미약하게나마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임해요. '앵커'는 예전에 찍어놓은 거라 제 예전 모습을 보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앵커' 촬영 당시 많은 상황적인 압박감을 이겨내고 나름의 방법을 잘 활용해서 마무리했다는 것에 감사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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