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이드를 통해 인간성을 조명하고 일상의 소중함을 상기시키는 영화 '애프터 양'이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의 화려한 포문을 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얼어붙은 영화제를 녹일 따뜻한 출발이다. 작품은 다양성과 가족애, 그리고 작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볼 거리를 던진다.
28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에 위치한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는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인 영화 '애프터 양'(감독 코고나다) 언론시사회 및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자리에는 이준동 집행위원장, 전진수 프로그래머, 배우 저스틴 민이 참석했다.
'애프터 양'은 제이크 가족이 소유한 아시아계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A.I 양이 작동을 멈추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준동 집행위원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정상적으로 개최되는 영화제에 기쁨을 표했다. 그는 "전주국제영화제를 정상적으로 개최하겠다고 결심한 건 오미크론 절정이 있기 전이었다. 영화제 자체도 중요하지만, 일상을 회복하는 데 의미를 뒀다"며 "올해는 어떻게든 축제성을 회복해야겠다는 마음이다. 다행히 방역 수칙이 완화되면서 전 좌석을 열 수 있었고, 좋은 스코어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고 소회를 밝혔다.
'애프터 양'을 개막작으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전주국제영화제는 작가주의적인 영화를 지지한다. 이 영화는 미래 세계의 안드로이드 이야기라 상업적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인간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며 "안드로이드라는 인간 바깥의 것으로 인간을 다루는 게 흥미로웠다. 또 안드로이드의 대단한 신기술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고요하면서도 정적인 성찰로 풀어내는 게 돋보여 이견 없이 개막작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저스틴 민은 코로나19 시기 영화를 공개하게 돼 시의적절하다고 평했다. 그는 "우리는 작고 소박한 순간들을 놓치지 쉽다. 그런데 이 영화는 천천히 양의 기억 장치를 통해 벽의 그림자, 나뭇잎 등 소소한 걸 상기시킨다"며 "그런 작은 것들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순간을 선물해 주는 영화다. 팬데믹에 소소한 일상의 특별함을 더 느꼈을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시의적절했다"고 미소를 보였다.
작품은 백인 아버지, 흑인 어미니, 그리고 입양된 아시안 딸을 통해 다양성 존중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전진수 프로그래머는 "나는 다문화를 지지하는 쪽이다. 영화에서 다른 나무를 붙이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인상적이었다"며 "우리도 외국인이나 다문화에 대한 편견을 뛰어넘고, 좋은 쪽으로 발전됐으면 좋겠다. 영화에서도 이런 부분이 많이 다뤄졌으면 한다"고 바랐다. 저스틴 민은 "동양계 미국인으로 미국에 살면서 서양 사람들에게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설명해야 되는 순간이 많은데, 그게 이 영화에 나오는 다름에 대한 테마"라며 "아시안 정체성과 우리 존재에 대해 더 이해할 수 있도록 이런 작품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저스틴 민은 작품의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그는 "비행기에서 읽었는데 눈물이 났다. 옆에 앉은 승객이 '괜찮냐'고 물어볼 정도였다"며 "난 항상 뭔가 힘겹게 생각하고 고민한다. 나도 모르게 뭔가를 더 원한 것"이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더 좋은 일이나 돈을 원했는데, 아마 미국이 추구하는 이상성을 따라간 것 같다. 그런데 양은 평화와 고요함을 추구하는 게 감동적이었다"며 "더 행복하기 위해 더 많이 있어야 되는 게 아니라 가진 것만으로 행복하다는 점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저스틴 민은 동양계 미국인으로 살면서 극중 양과 같이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 경험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양과 마찬가지로 나도 아시안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 순간이 많았다. 극중 양이 '중국에 대한 정보 말고, 진짜 감정과 기억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특히 공감이 가더라"며 "나는 미국에 사는데 한국 사람처럼 보이고,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어도 조금 할 수 있다. 그런데 가끔은 '이게 진짜일까?'라는 감정이 들기도 하는데, 아마 한국에서 어린 시절 기억이 없어서일 것"이라고 공감했다.
작품이 다루는 인종에 대해서는 "직접적이면서 미묘하고 복잡하다. 요즘 인종이 무엇인지와 차별에 대한 결과가 화두에 오르는데, 이 영화도 그 질문을 조명한다"며 "하지만 질문을 냉소적으로 다루지 않고, 가족의 렌즈로 다루는 게 다르다. 희망, 사랑으로도 인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걸 작품이 말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안드로이드인 양은 어떨 때는 로봇처럼 보이고, 또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저스틴 민은 로봇과 인간 사이에서 캐릭터 톤을 설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감독님을 만나서 처음 물어본 질문이 '양이 얼마나 로봇처럼 보여야 하는지'였다. 그런데 감독님이 답을 안 주더라"며 "아마 의도적으로 미스터리하게 한 것 같다. 촬영하면서는 여러 방식으로 장면을 찍으면 답을 찾아간 것 같다. 아주 인간적이나 로봇적으로 보이기보다는 양이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발견되는 측면에 중점을 뒀다"고 했다. 이어 "양은 인간이 되고 싶은 안드로이드가 아니다.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로봇이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플롯이 나오지만, 양은 가족에게 필요한 존재가 됐을 때 기쁨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저스틴 민은 비록 양이 박물관에 기증되지만, 희망찬 결말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처음에 이 가족은 단절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다 로봇이 고장 나면서 애도하는 과정을 거치고, 그의 기억과 추억을 통해 다시 가족이 연결되기에 희망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감독님은 영화의 미학이 열려 있음이라고 한다. 아마 다르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