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정권이 핵 무력을 고도화하는 가운데 유사시 자국 영공에서 소규모 핵을 터뜨려 대규모 전자기파(EMP) 공격을 가해올 가능성을 우리 군이 보고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이 개성이나 원산 앞바다 일대의 고고도 상공에서 저위력 전술핵 수준의 핵무기를 터뜨리면 한국 내 한미 연합 전력을 일시에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현 정부 임기 초반 이 같은 보고가 군에 올라갔음에도 EMP 방호 투자는 ‘게걸음’ 수준으로 미약해 향후 윤석열 정부 출범 시 시급히 보완 투자에 나서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29일 주요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임기 초반 합동참모본부는 A 연구기관에 의뢰해 이 같은 내용 등이 담긴 ‘EMP 공격 대비’ 관련 연구 용역 보고서를 2018년 말 제출 받았다. 보고서는 북한의 대남 도발 시나리오 분석 결과 중국 베이징 등이 피해 받지 않도록 한반도 일대 30㎞ 이상의 고고도에서 핵EMP 공격을 감행할 것으로 진단했다. EMP 공격을 받으면 전원이 커진 상태의 전자 장비들에서는 과전압으로 회로가 타들어가거나 작동 이상을 일으키게 된다.
또 다른 정부 소식통은 “우리 군과 주한미군의 첨단 무기·장비는 대부분 전자회로가 탑재돼 있어 EMP 공격을 받으면 순식간에 먹통이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반면 "북한군의 무기와 장비는 전자 장비가 덜 들어간 노후된 것들이 많아 EMP 피해를 덜보게 되며 전자 장비가 포함된 주요 무기 등은 자신들의 EMP 공격 직전에 전원을 잠시 꺼두거나 EMP 차폐 시설에 보관하는 식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고서는 특히 북한 영공 내 공중 핵실험을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로 평가했다. 개성이나 원산 앞바다의 고고도에서 저위력 핵무기(수십 킬로톤(kt)급 수준의 미니 전술핵)급의 핵을 폭발시키면 EMP가 한반도 전역에 미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경우 한반도에 형성되는 전자기장은 폭발 원점을 기준으로 남쪽 방향을 향한 말발굽 형태로 퍼져나가게 된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한국에 피해가 커지며 특히 수도권 등 중부 지역에서 최대 강도로 전자기장 피해가 일어날 것으로 시뮬레이션됐다.
북한이 이 같이 자국 영공 내에서 저위력 공중 핵실험을 하면 중국·일본 등의 피해가 미미해 상대적으로 국제적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중국의 경우 지린성·선양·칭다오 등 동북 방면 일부가 미약한 수준의 전자기장 영향에 들어갈 뿐이다. 일본의 경우 히로시마·구마모토 등 서남부 일부가 EMP 영향권에 들기는 하지만 그 자기장 강도가 미미할 것으로 예상됐다.
◇7차 핵실험은 고고도 EMP 위협 전주곡=국책연구기관에서도 북한의 핵EMP 공격 능력 고도화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상민 한국국방연구원(KIDA) 북한군사연구실장은 28일 개최된 KIDA의 ‘북한군사포럼’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통해 중성자탄이나 핵EMP탄을 실험했다고 발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현장에서 만난 군 출신의 한 전문가도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풍계리 실험장의 3번 갱도에 새 지선을 복구해 20~50Kt 위력의 전술핵 개발 실험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 정도 위력의 전술핵을 핵을 수십 ㎞ 상공의 고고도에서 터뜨리면 EMP가 중국·러시아 등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도 한반도 전역에 전자기장을 형성시켜 우리 군과 민간의 각종 전자 장비들에 피해를 입힐 것”이라고 우려했다.
북한이 대남 공격 시 HEMP 도발을 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에 대해 군사 전문가들은 두 가지 이유를 꼽는다. 첫째, 점령지 오염 최소화다. 북한이 남침 시 감행할 수 있는 유력 시나리오 중 하나는 전술핵 등을 활용해 서해5도나 수도권 일부(서울 혹은 수도권 북부)를 기습 점거한 뒤 점령지 시민들을 인질로 잡고 미군 철수 및 정전 협정을 벌이는 제한 전쟁 방안이다. 한데 전술핵으로 직접 지상을 타격하면 낙진 등에 따른 방사성 물질 오염이 광범위하게 발생해 북한군 스스로도 해당 지역을 점령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전면전 상황이 아닌 제한 전쟁이나 국지전에서는 북한이 핵을 고고도 이상 상공에서 터뜨려 EMP 공격을 하는 방식을 선택해 지상의 낙진 오염은 최소화하면서도 한미 재래식 군사 전력을 마비시키는 방법을 우선시 할 것이라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EMP공격은 낙진오염 적어 北 수도권 점거시 활용
中·日 여파 최소화하며 美 핵보복공격 회피할 우려
7차 핵실험 땐 EMP기술 고도화 가능성 점쳐지기도
둘째, 북한이 미국의 대북 핵 보복 공격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대한민국이 공격을 받으면 자국 본토가 공격받는 것과 같은 수준으로 대응해 지원하고 대응하는 ‘확장 억지’ 안보 공약을 약속한 상태다. 여기에는 핵무기 등을 동원한 적의 대량 살상 무기 공격에 대응해 핵 보복을 가하는 이른바 ‘핵우산’ 정책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 북한이 지상의 사람과 시설에 직접적인 핵 타격을 가하지 않고 핵EMP만 발생시켜 대량 살상을 피한다면 미국으로서는 핵보복을 주저하고 재래식 전력으로만 대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남훈 KIDA 미래전략연구위원장도 “북한이 서해5도 등을 침범할 경우 EMP 공격으로만 핵을 사용한다면 미국의 핵 보복 대응 가능성을 확신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EMP 공격 받으면 어떤 일 벌어지나=북한의 핵EMP 공격 위험에 대한 우려는 문재인 정부 이전의 과거 보수 정부 시절에서도 지적돼왔다. 이명박(MB) 정부 임기 후반부였던 2012년 하반기 국회 국정감사 당시 안규백 의원은 우리 군 지휘소의 99%가 EMP 공격에 무방비 상태라고 발표하면서 군에 방호 능력 확충을 주문했다. 그러나 10년째인 현재까지도 EMP 방호 능력 구축은 거의 제자리 수준이다. 복수의 군 관계자 이야기를 종합하면 박근혜~문재인 정부 시절 EMP 방호에 대해 국방부·합참 등의 차원에서 연구했지만 실질적으로 예산 배정은 미미했다. 합참뿐 아니라 육군도 2018년 하반기 한 공공기관에 연구 용역을 줘 EMP 방호를 위한 시험 기준 마련에 나서기도 했지만 일부 기준 보완 점검에 그쳤을 뿐 사후 EMP 방호 사업을 대대적으로 실시하는 데는 한계를 보였다.
국감서 “군시설 99% 무방비” 지적됐지만
정부·軍 10년째 방호능력 보완은 제자리
군에서 EMP 등을 연구했던 한 주요 관계자는 “현재 우리 군이 보유한 전투기·탱크·함정 등 중에서 EMP 방호가 되는 것은 1%도 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이 핵EMP 공격을 하면 우리 군이 자랑하는 첨단 무기는 대부분 고철 덩어리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요 시설도 마찬가지”라며 “대부분의 군 시설이 EMP에 취약해 전산 시설이 마비될 수 있다는 것을 군 지휘부도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예산이 많이 든다는 점을 이유로 방호 시설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청와대, 합참 지하 벙커 등 주요 지휘 시설에 대해서는 EMP 차폐 장치 등의 방호 설비 공사가 이뤄지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부실 시공 논란을 사고 있어서 실제로 EMP 공격을 차단할 수 있을지 군 실무자들은 반신반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국방부로 옮기기로 하면서 유사시 사용할 벙커 공사를 한달여 만에 급조하듯 하고 있어서 EMP 방호력에 대한 우려는 한층 가중되고 있다.
이런 문제를 조속히 풀려면 지휘부 벙커 등 주요 군 시설에 대해 EMP 방호가 제대로 됐는지 일제 점검해 부실 여부를 가려 재시공하고 많은 예산을 투입하기 힘든 현장 각급 부대대급 시설에 대해 저비용으로 적용할 수 있는 간이식 EMP 차폐 기술 및 상품 개발·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특히 간이식 기술의 경우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드는 완전 방호 시설과 달리 간단한 전자파 차폐 벽지 형태로 전자기장을 상당 부분 상쇄할 수 있는 기술 등도 존재하므로 이 같은 것들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