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 반도체 품귀 현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반도체 가격에 대한 전망은 전자 업계와 증권가 내에서도 크게 엇갈린다. 공급난 자체는 가격 상승의 요인이 맞지만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으로 정보기술(IT) 기기 수요가 줄어들면 그 효과를 상쇄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상당수 전문가들은 반도체 품귀 현상을 촉발한 차량용 반도체는 물론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의 가격이 상반기까지는 선방하는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올 2분기 D램 가격은 서버 수요 호조에 따라 보합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낸드플래시 가격은 1분기보다 7% 더 오를 것”이라며 “반도체 공급 둔화가 2분기 중후반부터 고객사들의 구매 심리를 자극해 성수기인 하반기부터 고정 가격을 상승시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연구원도 “낸드플래시 가격은 일본 반도체 기업 기옥시아(옛 도시바메모리)의 생산 차질 효과까지 겹쳐 2분기 내 반등할 것”이라며 “D램 가격의 하락 폭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시장 조사 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반도체 매출은 총 5949억 5200만 달러(약 731조 5000억 원)로 2020년보다 26.3% 증가했다. 물류·원자재 비용 상승 효과가 맞물린 결과다. 특히 반도체 품귀 현상을 주도한 차량용 반도체의 매출 성장률이 34.9%로 가장 높았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성장률도 33.2%에 달했다.
다만 IT 기기 수요의 급감이 공급난을 뛰어넘어 반도체 가격의 하락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경고도 곳곳에서 나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중국의 지역 봉쇄, 코로나19 사태 해소 등 IT 기기 시장에 미칠 악재가 너무 많다는 진단이다.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이달 15일 기준으로 D램 현물 가격은 7주 연속 내렸다. 일부 낸드플래시 제품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또 다른 시장 조사 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최근 “전자 기기 업체들이 보유한 재고가 늘어나고 IT 제품 등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줄어들면서 반도체 공급난도 하반기에는 조정 국면에 들어설 것”이라고 관측했다. 트렌드포스도 올해 스마트폰 출하량 전망치를 13억 8000만 대에서 13억 6600만 대로, TV는 2억 1700만 대에서 2억 1500만 대로, 노트북은 2억 3800만 대에서 2억 2500만 대로 각각 낮춰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