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 낮추기에 돌입한 유럽연합(EU)이 아프리카와 미국·중동 등을 대체 공급처로 삼는 방안을 추진한다. 러시아 제재에 여전히 부정적인 일부 회원국을 제외하고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 발표를 강행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이른바 ‘비우호국’에 대한 자국 상품과 원자재 수출을 금지하며 맞불을 놓았다.
2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이 입수한 러시아 에너지 제재 관련 문건 초안에 따르면 EU는 우선 나이지리아와 세네갈·앙골라 등 액화천연가스(LNG) 매장량이 많은 서아프리카 국가로부터 LNG를 공급받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 미국에서 올해 150억 ㎥, 2030년까지 연간 약 500억 ㎥의 LNG를 확보하고 이집트·이스라엘과는 LNG 공급 확대를 핵심으로 한 3자 양해각서(MOU)를 맺을 방침이다. 통신은 “이 같은 대체 공급처로부터 LNG의 경우 연간 500억 ㎥ 규모, 파이프라인 천연가스(PNG)는 100억 ㎥를 각각 충당한다는 것이 EU의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밖에 문건에는 아제르바이잔산 가스 수입을 기존의 2배로 늘리고 캐나다 역시 가스 대체 공급처로 삼는 방안이 담겼다. 한국과 일본으로 향하던 LNG 물량 일부는 이미 유럽으로 돌려진 상태다.
이처럼 유럽의 에너지 공급 다변화 방안이 윤곽을 드러내면서 EU의 대(對)러시아 에너지 제재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러시아가 최근 자국 가스 대금을 루블화로 결제하라는 요구를 거부한 폴란드와 불가리아에 가스 공급을 전면 중단한 것도 EU의 러시아 에너지 제재 속도를 높인 계기가 됐다. 러시아가 언제든 에너지를 무기로 삼아 EU에 ‘보복’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진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EU가 러시아 제재에 부정적인 헝가리와 슬로바키아를 제외하고 이르면 3일 중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를 포함한 제재를 단행할 예정이라고 이날 보도했다. 러시아에 대한 높은 의존도로 에너지 금수에 머뭇거리던 EU가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자국 에너지 제재 움직임에 러시아는 즉각 ‘수출 규제’로 대응했다. 러시아 크렘린궁(대통령실)은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미국과 EU 27개 회원국 등 이른바 ‘비우호국’에 대한 러시아산 상품·원자재 수출을 금지한 특별 경제조치 대통령령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러시아 국가기관과 지방정부 등이 대통령령이 정한 외국 법인 또는 개인과 계약을 체결하는 일이 금지되는 것으로, 비우호국과 모든 경제 교류를 중단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또 비우호국에 러시아 생산품과 채굴 원료를 반출하는 것도 막았다. 앞서 지난 3월 러시아는 농기계와 운송 수단 등 총 200종이 넘는 러시아산 상품·장비의 국외 수출을 중단한 바 있는데, 이번 조치로 ‘수출 규제’ 범위가 더욱 확대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