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8%까지 치솟으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3년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화로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거리 두기 해제에 따른 수요 회복이 맞물리면서 석유와 가공식품 등이 전방위적으로 물가를 끌어올리는 형국이다. 공급과 수요 측면의 동시 요인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서민들의 시름도 한층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이 3일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4.8% 오르며 2008년 10월(4.8%) 이후 13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3월(4.1%)에 이은 두 달 연속 4%대 상승률인 동시에 상승 폭을 더욱 키웠다. 물가만 놓고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의 상황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석유류를 포함한 공업 제품이 상승을 이끌었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원유 가격이 치솟으면서 지난달 석유류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34.4%나 뛰어올랐다. 등유(55.4%)와 경유(42.4%) 등 서민들이 애용하는 연료 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고 차량용 액화석유가스(LPG)와 휘발유 가격도 각각 29.3%와 28.5%씩 급등했다. 빵(9.1%)을 비롯한 가공식품 가격도 1년 새 7.2% 올랐다. 석유류와 가공식품을 포함한 공업 제품의 물가는 7.8% 오르며 2008년 10월(9.1%)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수입 쇠고기(28.8%)와 포도(23.0%), 닭고기(16.6%) 등 농축수산물 가격도 전월보다 상승 폭이 확대됐다.
각종 서비스 물가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외식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6.6% 올라 1998년 4월 이후 가장 가파른 상승 폭을 기록했다. 국제 유가와 연동되는 기준연료비가 인상되면서 전기료는 같은 기간 11.0% 올랐고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가스요금을 올리면서 도시가스 가격(2.9%)도 상승했다.
전방위적인 물가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서민들의 생활고도 가중되는 모습이다. 구입 빈도와 지출 비중이 높아 소비자들이 가격 변동을 민감하게 느끼는 품목들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는 지난달 5.7% 오르며 2008년 8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지수(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 역시 3.6% 뛰어오르며 2011년 12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문제는 가파른 물가 상승세가 당분간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글로벌 공급망 차질이 장기화되는 데다 해상 운임과 원·달러 환율 상승도 수입 물가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불안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원유 등 원자재 가격과 전기요금 인상도 또 다른 물가 상승 압력 요인이다. 공급 측 요인에 더해 최근 거리 두기 해제에 따른 소비 수요가 급증할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이러한 대내외 여건을 반영해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의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3.1%에서 4.0%로 상향 조정한 바 있다. 한국은행도 이날 이환석 부총재보 주재로 물가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물가상승률이 당분간 4%대 오름세를 지속할 것이라며 경제주체의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통계청도 기상 여건 악화에 따른 곡물 가격 상승과 공급망 차질, 우크라이나 사태 등 지정학적 요인이 겹치면서 물가 상승 요인이 악화될 수 있다며 물가상승률이 5%대로 올라설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물가 관리에 비상이 걸리면서 한국은행이 이달 26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지난달에 이어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