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사는 서순호씨(64·가명). 세 달에 한 번씩 대학병원 외래진료를 위해 서울로 향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부산역에서 7시 30분에 출발하는 KTX를 타도 서울역에 내려 대학병원으로 이동하면 점심시간이 훌쩍 넘는다. 병원 푸드코트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외래 예약시간까지 20~30분을 대기하지만, 서씨에게 허용된 외래진료 시간은 고작 3분 뿐이다. 진료 후 약을 처방받아 부지런히 이동해도 오후 8시가 돼야만 부산에 도착할 수 있다.
김광준 세브란스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6일 ‘비대면 의료서비스 적용 전략' 포럼에서 "실제로도 지방에 거주하는 고령 환자가 3분 진료를 받기 위해 하루종일 시간을 들여 찾아오는 사례가 부지기수"라며 "고령화 사회로 인한 사회적 비용 부담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원격의료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3분의 대면진료가 12시간의 이동시간과 수고를 충족할 만한 서비스인지 고민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해외에서는 비대면 진료가 합법화되지 않은 나라를 찾기 힘들 정도다. 환자들의 수요를 생각해서라도 비대면 진료의 장점을 활용하려는 시도가 이뤄져야 한다”며 "더이상 할지 말지를 논의하기 보단 어떻게 시행할지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과 빅데이터 임상활용연구회 공동 주최로 열린 이날 포럼에서는 미국과 독일, 영국, 일본 등 다양한 해외 국가들의 비대면 의료서비스 추진 사례가 공유됐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빅데이터 임상활용연구회장을 맡고 있는 김헌성 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교수와 함께 ‘비대면 의료서비스의 특성에 따른 적용 필요분야 탐색 연구’를 수행 중이다.
이날 포럼 참석자들은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이후 "전 세계적으로 원격의료 활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의료 현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 기간 비대면 의료서비스를 경험한 소비자들의 만족도가 증가하고 관련 분야에 대한 투자 확대와 정책 변화가 이뤄지면서 향후 성장세를 지속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박현애 한국원격의료학회장(서울대 간호대학 교수)은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의 보고서를 인용해 "미국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원격의료 활용이 38배 증가했다"고 소개했다. 2020년 4분기 기준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 대한 벤처캐피탈 투자는 147억 달러로 2018년 4분기 83억 달러 대비 2배 가량 늘었다. 맥킨지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지속적으로 원격의료를 이용하겠다'고 답변한 소비자들은 약 40%로 코로나19 이전(11%)보다 4배 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 회장은 "향후 국내에서 비대면 진료를 채택할 때 어떤 형태로 구현되는지에 따라 참여 비율이 달라질 것"이라며 "실제 진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는 제도가 마련돼야만 성공적으로 안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물꼬를 터 2년 여간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가 허용됐던 우리나라는 최근 상시화하기 위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2월 24일 처음 도입된 비대면 진료는 이날(6일) 기준 473만 건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재택치료 중 이뤄진 비대면 진료가 약 550만 건까지 더하면 이미 1000만 건을 훌쩍 넘는다. 그간 원격의료에 '무조건 반대' 입장을 고수해 왔던 대한의사협회는 지난달 24일 정기총회에서 '의협 주도의 원격의료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발표하며 사실상 찬성 입장으로 돌아섰다. 여기에 새 정부가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국정과제로 삼겠다고 발표하면서 우리나라도 30년 넘게 묶여있던 원격의료의 빗장이 풀릴 조짐이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는 지난 4일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약사회, 대한간호협회, 대한병원협회 등 보건의약단체와 함께 비대면진료협의체를 구성하고 관련 논의를 본격화하기 위한 첫 발을 뗐다. 향후 협의체 차원에서 비대면 진료 전용 의료기관, 배달전문약국을 방지하는 대책과 함께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처방과 조제를 토대로 특정 요양기관으로 쏠림 현상이 생기지 않고 비대면 진료와 조제가 이뤄지기 위한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고형우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코로나19 이후 1000만 건이 넘는 비대면진료를 시행하는 동안 진료의 질이 좋아졌다고 보장할 수 없으나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비대면 진료 협의체와 함께 최혜영 의원이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을 토대로 제도화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진 환자부터 의원급 중심으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고 대상자도 의료 취약지역이나 만성질환자, 거동이 불편한 환자 등으로 제한할 가능성이 높다"며 "의료계와 환자단체, 시민단체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비대면 진료에 따른 안전성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선에서 제도화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