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사주' 불기소 결정서에 드러난 '檢증거인멸' 정황

수사팀 '최강욱 혐의없음' 보고에도 "尹지시" 결과 뒤집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잔디광장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해단식에서 안철수 인수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고발사주’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실 검사들이 압수수색 가능성이 큰 디지털 기기의 내용을 대거 삭제·교체해 증거물 확보 실패로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공수처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검찰총장 시절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시 열린민주당 의원)의 허위사실 유포 혐의에 대한 수사팀의 ‘혐의없음’ 의견을 보고받은 뒤 기소하도록 지시한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7일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이 공개한 공수처의 ‘고발사주 의혹’ 사건 불기소 결정서에는 2020년 4월 대검 수정관실 소속 검사들이 인터넷매체 '뉴스버스'의 고발 사주 의혹 보도가 나온 직후 '증거 인멸’에 나선 정황이 담겼다.


수정관실 소속 임모 검사는 불과 10일 전 교체했던 PC의 하드디스크를 보도 당일인 지난해 9월 2일 또다시 교체했고, 7일에는 텔레그램과 카카오톡 대화 내역을 모두 지웠다. 그는 열흘 뒤 서울중앙지검 조사 직전에 앞서 또 다른 연루자인 성모 검사와의 통화 내역과 텔레그램 비밀채팅방을 삭제했다. 나흘 뒤에는 아예 삭제 정보 복구를 방해하는 '안티포렌식' 애플리케이션까지 스마트폰에 설치했다.


공수처는 뒤늦은 9월 28일 성 검사의 휴대전화를 압수수색으로 확보했지만, 비밀번호 제공을 거부해 포렌식 조사가 불발됐다. 10월 초에는 휴대전화가 초기화됐다고 한다. 공수처는 또 11월 15일 대검 수정관실 PC를 압수수색했지만, 저장장치는 모두 포맷·초기화 등 기록 삭제 작업이 이뤄진 후였다.


홀로 재판에 넘겨진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도 9월 13일 텔레그램을 원격으로 탈퇴했다. 그는 법원 영장실질심사에서는 휴대 전화 잠금 해제에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영장 기각 뒤에는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공수처는 의혹 제기 이후 8일이 지난 9월 10일 첫 압수수색을 통해 검사 출신인 국민의힘 김웅 의원의 휴대전화도 확보했지만, 이미 교체된 뒤였으며 비밀번호도 제공받지 못했다고 한다. 차량 블랙박스도 수색했지만, 이동 과정에서 자료가 모두 삭제됐다고 한다.


공수처는 성·임 검사를 고발장 작성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앞서 손 보호관은 2020년 4월 3일 오전 10시 26분부터 28분까지 텔레그램으로 김 의원에게 실명 판결문 3건을 최초 전송했는데, 성·임 검사는 그 직전인 이날 오전 9시 14분∼10시 16분까지 내부 시스템에 이 판결문들을 검색·조회했다


성 검사는 10시 19분께 검찰 메신저로 손 보호관과 대화했지만, 보관기관이 지나 내용 확인에 이르진 못했다고 공수처는 전했다.


2차 고발장이 손 보호관에서 김 의원으로 전달된 시점은 4월 8일 오후 4시 2분이었다. 공수처는 해당 고발장에 이날 오전 11시12분∼13분에 임 검사가 검색했던 세 건의 판결문 중 두 건의 사건번호와 판시 내용이 담겼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러한 내용이 공개되자 김 의원은 입장문을 통해 "압수 직후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에게 휴대전화 잠금해제 패턴을 알려줬고, 당시 공수처 수사관은 압수수색조서에 그 패턴을 그려 넣은 사실도 있다"며 "공수처의 이러한 거짓말은 수사 대상자가 범죄를 숨기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매우 저열한 작태이며 명백한 불법"이라고 반발했다.


김 의원은 "공수처는 휴대전화를 압수해간 후 2주 넘게 포렌식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압수 대상자가 빨리 자료를 추출하라고 수차례 독촉하자 비로소 포렌식에 나선 바가 있다"며 "만약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포렌식을 했는지 공수처는 답을 하기 바란다"고 반문했다.


불기소 결정서에는 ‘미래통합당 고발사건’을 수사한 수사팀장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장검사가 2회에 걸쳐 대검에 ‘혐의없음’ 의견을 보고했다고 적혔다. 이 사건은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이 2020년 최강욱 의원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이다. 미래통합당은 최 의원이 선거 기간 과거 조국 전 법무부장관 아들의 인턴 활동 확인서를 허위로 작성하고도 “이는 사실이 아니다”고 발언한 것을 허위 사실 유포로 봤다.


수사팀장의 혐의없음 의견 보고에도 대검 공안수사지원과장은 “총장님은 기소의견이고 사건 재검토 지시”라는 연락을, 대검 공공수사부장은 “총장님은 기소 지시”라는 연락을 각각 취해왔다. 이후 수사팀은 서울중앙지검장의 지시로 사건처분경과 관련 수사보고를 기록에 첨부한 뒤 사건의 공소시효 만료일인 2020년 10월 15일 최 의원을 재판에 넘겼다고 공수처는 밝혔다.


/이진석 기자 lj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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